민주당과 그를 위시한 정당들(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의 지지자들과 자본주의를 수용한 자칭 이명박 정부내에서의 좌파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한나라당 전선이라는 것은 결국 허울좋은 민주당 밑으로 모여라의 주장에 불과하다.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지만 민주당은 한번도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다른 정당의 후보를 중심으로 단일화를 추진한 적이 없는 정당이다.
2008년 총선 당시 노원구를 기억하나. 노회찬 40.1% 홍정욱 43.1% 민주당 김성환 16.3% 였다. 민주당은 왜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노회찬 후보로 단일화해주지 못하고 7막 7장의 홍정욱을 국회로 보냈나.
이게 바로 민주당의 겉다르고 속다른 기만이다. 그리고 그것에 속고 있는 자들이 진보신당 홈페이지를 마비시키면서 달아낸 개소리들이 끝없는 민주당 짝사랑의 실체다. 87년 6월 항쟁부터 시작된 끝없는 짝사랑의 실체다. 진보신당은 그 짝사랑을 단호히 잘라내고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요구를 실천할수 있는 대중정치를 갈망한 투쟁의 소중한 성과물이다.
김대중, 김영삼으로 대표되던 보수야당세력은 87년부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내에서 민주재야세력과 민중운동세력을 몰아내고 자기네 밑으로 다 모여라고 주장하면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그리고 자기네끼리는 단일화 못했지. 그래서 양김분열로 노태우에게 정권을 바쳤다. 그리고 김대중은 1997년 15대 대선에서 군부독재의 찌꺼기 김종필과 연합해서 당선되었지. 김영삼의 쓰레기 짓거리 3당 합당까지 가서 보지않더라도 뻔히 알수 있는 사실이다.
87년 민중항쟁의 결과물, 그리고 2008년 촛불항쟁의 결과물을 보수야당세력에게 갖다바친 것인데 그러한 야합세력을 끝없이 지지한다. 밉지만 어쩔수 없이 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도 민주당 정세균 세력을 강화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부차적인 결과로 한명숙 스스로가 부족해서 떨어진 선거결과에 대해서 노회찬에게 책임을 돌린다. 개새끼들.
92년 대선에서 백기완 후보로 독자세력으로 탄생했어야할 민중운동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개에게 준 자들이 지금까지도 살아서 씨부린다. 87년 민중항쟁의 성과로서 군사독재세력은 소멸하거나 극소수로 편입되어야 했다. 김종필이나 이인제가 걸어야할 길을 걸은 자들은 기껏해보았자 손학규 정도. 그정도가 시베리아로 갔지. 민정당 세력의 숨통을 계속해서 트이게 해준 자들이 바로 민주당을 위시한 보수야당세력이다.
김영삼이나 김대중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소수 수구세력과 야합하면서까지 정치적 기반을 늘리려 하면 지지층이 이탈한다. 그러한 기미가 보이면 재야 중 지지세력으로 하여금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척하는 정당을 만드는 운동을 벌이게 한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국현이 그러한 세력의 중심이 되어서 결국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에게 교섭단체 자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94년에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김근태가 저지른 오류가 그대로 반복된다. 지금 그것을 반복하는 자의 대표주자는 유시민이다. 유시민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끊임없이 끌어모아서 진보세력의 자양분을 갈취한다. 2002년 ‘개혁당’ 창당이 여력이 모자라서 잘 안되자 다시 국민참여당을 만들어서 그러한 행동을 반복한다. 누군가는 끊임없는 기억상실에 시달리고 있고, 누군가는 포기할줄 모르는 짝사랑을 반복하고, 누군가는 되지 않는 거짓말을 계속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를 인간적으로 연민하는 것과는 별개로 노무현 정권에서는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라 이라크 파병을 했고, 한미FTA를 추진했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추진한 것, 의료민영화를 추진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이루어졌다.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김용철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삼성과의 밀착관계를 폭로했다. 그는 죽음으로서 면죄부를 얻었고,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애써 모른척 한다. 노무현을 욕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수야당은 결국 그러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번 6.2 선거를 하자고 5개의 정당(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4개의 시민단체(희망과 대안, 민주통합시민행동, 2010연대, 시민주권)가 모여서 회의를 했다. 이 ‘5+4 회의’는 친민주당 성향의 재야명망가 집단이었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여기에서 정책적 선명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탈하고 말았다. 경기도지사와 서울시장 중 하나를 원해서 나갔다는 말 이전에 정책적 이슈파이팅을 했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진보신당마저도 서울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구시장이나 경북지사 선거에서 떨어지는 선거를 하더라도 지역정치 타파를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다. 안희정과 이광재, 김두관의 지역정치 타파의 의지를 진보신당도 가져야만 했다. 그걸 못했다. 유시민이 대구시장에 나가지않고 떨어지는 경기도지사 선거를 한 것처럼, 진보신당도 전략적 기점으로서 한나라당의 독자적 선거로 굴러가는 대구경북지방에서 후보를 내는 사고를 하지 못하고 대구경북 지방에서는 어떠한 이슈도 없는 지루한 선거를 거쳐서 한나라당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그러한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이 정치적 외연을 확대할수 있는 선거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보수야당 지지자들이 한나라당 2중대라고 비판하는 것도 일견 들을 가치가 생긴다. 진보신당은 명백한 하방성, 지방성을 가지고 아래에서부터 올라가야했다. 그래서 지역정치구도를 깨는 것에 일견 집중해야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었다.
김두관의 경남지사 당선, 부산시장 후보로 나온 민주당 김정길의 선전, 충남북의 민주당 후보 당선만큼의 성과도 얻지 못했다. 문국현 후보가 이재오를 겨냥하고 은평구에서 나온 것이나 강기갑이 이방호를 겨누고 경남 사천에서 격돌한 것만큼의 상상력도 없었으니.
노회찬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노회찬의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투표했다. 심상정 후보가 사퇴한 것을 알면서도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다. 그만큼의 진정성을 과연 진보신당 중앙에서 가질수 있었는가. 노회찬 심상정이 없었다면 무효표를 던졌을 사람들이 지지한 그만큼의 성과를 소중하게 받아안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책보다는 전망을 가지고 낙관적으로 보아야 할 시점인데.
지역으로 내려가자. 가장 보수적인 시골로 내려가자. 가장 척박한 곳에서 가장 낮은 희망을 가지고 굴러서 살자.
그렇게 살아서 자립하자. 나의 희망을 내가 만들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