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이 불에 탔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애도의 뜻을 표했지만 그날 당시 나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일상과 유리되어서 도로 한가운데 존재하는 숭례문이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 우리의 일상과 어울려서 별달리 교류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서울시내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과거의 기억이라는 의미 이외에 나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대문에 불을 지른 범인이 잡혔다. 토지 보상금이 적은 것에 불만을 가진 70대 노인이다. 자신의 토지가 아파트 진입도로의 일부로 편입되어서 보상대상이 되었지만 보상금이 예상보다 적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여러 차례 진정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소송도 패소했다고 한다. 2년 전에 창경궁인가 경복궁인가에 불을 질러서 아직 집행유예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 일을 저질렀다.
대구 지하철역에 불을 지른 사람도 나이도 많고 사회에서 소외된 노숙 노인이었는데, 우리 사회는 이들의 분노와 우발적 행동에 대해서 몹시 위태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토록 날을 세우고 다듬은 사회이고 체제이고 시스템이건만 돌출 행동에 대해서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 대책을 요구하기에 앞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고 보듬어주고 안아줄수 있는 사회였다면 어떨까 하는 헛된 아쉬움이 든다. 아무도 그가 부탄가스와 사다리를 준비해서 숭례문 입구로 들어가기까지 알지도 못할 만큼 그는 외톨이였고,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사고와 상처와 아픔은 좋은 논쟁거리가 된다. 이명박이 서울 시장 재임 시절 개방을 결정했고, 오세훈 시장이 결정권을 가진 서울시가 이를 방치했으며, 허접한 방비체계를 가진 KT 텔레캅이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홍보 효과를 노리고 공익 사업이랍시고 숭례문을 내버려두었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라고 짖는 자들과 이명박 정부의 서막을 알리는 하늘의 뜻이라고 제멋대로 재는 자들의 외침에는 정작 아픔과 공명하는 울림은 없다.
숭례문보다는 남대문이 더 친근했다. 바지 지퍼가 열려도 남대문이 열린 것이고 지금은 사라진 아이들이 부르던 동요에도 남대문이 열려있었다. 조선의 수도 서울이 세워지면서 남쪽의 길을 관장했던 도시의 기억은 그래도 남대문에서 '여기까지였단다' 라고 친절하게 굳이 알려주는 듯한 할아버지의 울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에 타서 스러지고 남은 것이 없다.
밤 늦게까지 업무와 관련된 얘기를 하고 왠지 허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불에 타서 검게 그슬린 몸퉁아리만 남은 남대문이 떠올랐다. 남대문 시장과 용산, 숙대 근처를 버스 타고 다니면서 흔하게 보아온 풍경이 이제 불에 타서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묵직해지면서 먹먹해졌다. 남대문이 일상과 유리된 사적일 뿐이고 도로 교통에 방해된 건물이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설득해도 논리적으로 그것이 옳겠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막을수가 없었다.
재건이 되고 복원이 되어도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던 남대문과는 명백히 다른 새 건물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복원을 갈라놓는 것은 불에 타서 무너지던 남대문의 모습이 우리의 가슴 속을 아프게 후벼놓았기 때문이다. 애써 무덤덤하려고 했지만 나도 남대문의 화재가 속쓰리고 가슴이 아프다. 그저 이렇게 가슴이 쓰리고 아프고, 모두에게 무언가가 남았다.
남대문에 불을 지른 범인이 잡혔다. 토지 보상금이 적은 것에 불만을 가진 70대 노인이다. 자신의 토지가 아파트 진입도로의 일부로 편입되어서 보상대상이 되었지만 보상금이 예상보다 적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여러 차례 진정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소송도 패소했다고 한다. 2년 전에 창경궁인가 경복궁인가에 불을 질러서 아직 집행유예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 일을 저질렀다.
대구 지하철역에 불을 지른 사람도 나이도 많고 사회에서 소외된 노숙 노인이었는데, 우리 사회는 이들의 분노와 우발적 행동에 대해서 몹시 위태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토록 날을 세우고 다듬은 사회이고 체제이고 시스템이건만 돌출 행동에 대해서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 대책을 요구하기에 앞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고 보듬어주고 안아줄수 있는 사회였다면 어떨까 하는 헛된 아쉬움이 든다. 아무도 그가 부탄가스와 사다리를 준비해서 숭례문 입구로 들어가기까지 알지도 못할 만큼 그는 외톨이였고,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사고와 상처와 아픔은 좋은 논쟁거리가 된다. 이명박이 서울 시장 재임 시절 개방을 결정했고, 오세훈 시장이 결정권을 가진 서울시가 이를 방치했으며, 허접한 방비체계를 가진 KT 텔레캅이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홍보 효과를 노리고 공익 사업이랍시고 숭례문을 내버려두었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라고 짖는 자들과 이명박 정부의 서막을 알리는 하늘의 뜻이라고 제멋대로 재는 자들의 외침에는 정작 아픔과 공명하는 울림은 없다.
숭례문보다는 남대문이 더 친근했다. 바지 지퍼가 열려도 남대문이 열린 것이고 지금은 사라진 아이들이 부르던 동요에도 남대문이 열려있었다. 조선의 수도 서울이 세워지면서 남쪽의 길을 관장했던 도시의 기억은 그래도 남대문에서 '여기까지였단다' 라고 친절하게 굳이 알려주는 듯한 할아버지의 울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에 타서 스러지고 남은 것이 없다.
밤 늦게까지 업무와 관련된 얘기를 하고 왠지 허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불에 타서 검게 그슬린 몸퉁아리만 남은 남대문이 떠올랐다. 남대문 시장과 용산, 숙대 근처를 버스 타고 다니면서 흔하게 보아온 풍경이 이제 불에 타서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묵직해지면서 먹먹해졌다. 남대문이 일상과 유리된 사적일 뿐이고 도로 교통에 방해된 건물이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설득해도 논리적으로 그것이 옳겠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막을수가 없었다.
재건이 되고 복원이 되어도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던 남대문과는 명백히 다른 새 건물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복원을 갈라놓는 것은 불에 타서 무너지던 남대문의 모습이 우리의 가슴 속을 아프게 후벼놓았기 때문이다. 애써 무덤덤하려고 했지만 나도 남대문의 화재가 속쓰리고 가슴이 아프다. 그저 이렇게 가슴이 쓰리고 아프고, 모두에게 무언가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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