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거짓말하는 능력

아담과 하와의 장남 카인은 동생을 시기해 들판에서 살해한다. 바로 그날 하나님이 직접 묻는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카인은 말한다.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성서에 따르면 우리는 살인자의 자손인 동시에 하나님에게 대놓고 거짓말을 한 사람의 자손이기도 하다.

거짓말은 인간만 하는 게 아니다. 아마존의 숲속에 사는 새들도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상황은 이렇다. 각기 다른 종의 새들이 함께 무리를 지은 집단에는 보초 역할을 맡는 종이 있다. 흰날개때까치와 개미때까치다. 매 같은 포식자가 나타나면 큰 소리로 울어 경보를 울린다. 이들이 거짓 경보를 내는 경우가 관찰됐다. 다른 새들이 황망히 몸을 숨기는 동안 유유히 날아다니며 눈에 띄는 벌레들을 먹어 치우는 것이다. 관찰된 718회의 경보음 가운데 106회는 근처에 포식자가 없는 거짓 신호였으며 대개는 위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까치의 지능이 새 중에서 가장 높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에게서 언어가 진화한 배경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가려내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정신과 의사 조지 서번은 “거짓말은 제2의 천성”이라고 말했다. 서로 잘 아는 두 사람이 10분간 대화를 하면서 보통 2~3개의 거짓말을 한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거짓말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공익을 위한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은 필요하다. 다음 주에 금융실명제를 시행할 예정이어도 “그런 계획 없다”고 잡아떼야 정책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청혼을 거절하면서 “당신이 일류대 출신이 아니라서”라고 밝히면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줄 뿐이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너무 ‘정직’해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듯하다. ‘유방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기념’으로 남편이 오피스텔을 선물로 사주고, ‘자연을 사랑해서’ 절대농지를 구입했다는 해명이 그렇다. “감기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기념으로 새 차를 사주지는 않았나” “자연을 사랑하면 오지의 숲을 구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불리한 결과를 뻔히 예측할 수 있는 데 굳이 그런 해명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사실’이어서 그대로 밝혔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공직자는 정직해야 하지만 때론 거짓말을 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정직이 불필요한 상처를 국민에게 주는 경우에는.

조현욱 논설위원

조현욱 논설위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media/index.asp?uid=poemloveyou
악성 댓글 추천.

 [이훈범시시각각] 총리감이 없다고요?

누구나 아는 이솝우화 한 토막. 고깃덩이를 문 까마귀가 나뭇가지에 앉았다. 여우가 다가와 말했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까마귀님, 노래를 들려 주셔요.” 우쭐한 까마귀가 목청을 높였다. 입을 벌리는 바람에 떨어진 고기를 물고 달아나며 여우가 말했다. “멍청한 까마귀야. 고기나 먹지 그 목소리로 무슨 노래냐.”

이처럼 교훈 담긴 우화를 입에 달고 다닌 이솝이지만 정작 자기 처신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델포이에 갔을 때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감탄하면서도 노예 신분인 그를 천대했다. 그러자 그는 델포이 사람들을 어리석다 깔보고 비웃었다. 화가 난 사람들은 그의 짐 속에 신전의 제기를 몰래 넣었다. 도둑 누명을 쓴 이솝은 절벽에서 내던져졌다.

그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남을 향한 잣대의 치수는 촘촘하면서 나를 재는 잣대는 넉넉하기 십상인 거다. 우리 사회에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흔히 그랬다. 겉으론 근엄하게 세상을 논하고 세태를 걱정하면서 속으론 세상사 배 불리는 길로 잔머리를 굴렸고 세태를 앞질러 물을 흐렸다. 그래서 세상이 더 어두워지고 세태가 더 탁해지는데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런 이들 중에 요즘 땅을 치는 사람 많겠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 짓는 이들 참 많겠다. 새 정부 구성할 국무총리와 각료들 인선작업이 애를 먹고 있다고 해서 하는 소리다. 사람이 없다는 거다. 가진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에서 총리 할 사람, 장관 할 사람이 없다는 거다. 좌파 정권 10년에 우파 인력 풀(pool)이 바닥나서이기도 하지만 간단한 약식 검증에도 후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는 거다. 재산·병역·학력처럼 세상에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는데도 그렇단다.

약식검증을 통과하면 정밀검증에 들어가는데 이게 더할 건 두말이 필요 없다. 관계기관에 의뢰해 납세·부동산·주민등록·전과 기록들을 꼼꼼히 따져보고 학자의 경우 논문 표절 여부도 확인하는데 발 안 저린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기록 조회를 위해 본인 동의를 구하면 60% 이상이 고개를 젓는다는 거다.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어서”란다. 눈 앞의 떡을 보고도 밀쳐야 하니 땅 치고 한숨 안 쉬겠나 말이다. 설령 동의하더라도 검증을 해 보면 절반 이상이 탈락하고 만다는 거다. 처음에 100명을 놓고 검토했다면 이제 10명도 안 남는다. 후보의 능력을 따질 겨를이 있겠나. 거기에 누굴 시켰다 해도 인사청문회나 언론 검증 과정에서 뭔 문제가 터져나올지는 그야말로 신(神)만이 알 일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눈물 날 일이지만 개탄만 하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이참에 국민적 대사면을 하는 건 어떨지. 전문적 투기나 상습적 탈세처럼 파렴치한 범죄가 아니라 그저 한 순간 욕심에서 빚어진 어지간한 오점들은 눈 딱 감고 한 번 용서해 주면 어떨지. 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많은 사람은 억울할 터지만 본래 용서는 정직한 사람 몫 아닌가. 이참에 용서하고 선을 긋는 것은 어떨지. 대통령 당선인에게 그랬듯 과거의 허물은 덮어두고 인재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면 어떨지. 그들 손에 걸레를 들려줘 세상을 투명하게 닦을 임무를 맡기는 건 어떨지. 그러면서 자신의 때까지 씻을 수 있게 하면 어떨지. 그렇게 함으로써 먼지가 켜켜이 쌓인 과거와 단절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보지 않는 맑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 보는 건 어떨는지.

그들에게 무작정 돌을 던지는 건 이솝의 우(愚)를 또 한번 범하는 짓이다. 어찌 보면 온갖 부조리를 관행과 관례라는 이름으로 눈 감아온 게 우리 자신 아닌가. 그들이 그걸 즐겼지만 나도 (기회가 닿았으면) 마찬가지였을지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까마귀는 고기 잃고 망신을 당했지만 나무에 앉은 것이 목소리 예쁜 꾀꼬리라면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참으로 사람이 없다니 하는 말이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



이훈범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cielbleu3&folder=2&list_id=9015840
다행히 이분은 댓글을 다실줄 안다.

중앙일보 최근 연타석 홈런을 날리고 있다. 국민들에게 일간지가 언제 이렇게 웃음과 감동을 준 적이 있었던가. 중국 포탈에서 불펌한 사진을 1면에 개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최근 칼럼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정신줄을 놓고 살기로 앙 작정한 듯. 중앙 일간지가 이런 식으로 글을 써도 되는 것인지.

일개 초딩도 이런 글은 쓰지 않는다. 그것도 진지하게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한다. 중앙일보가 조선일보의 아성을 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 본인들이나 사내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다. 언론의 게이트키퍼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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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꼬뮨들

2008/02/27 13:14 from 꼬뮨
꼬뮨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구성원들을 먹여 살리는 활동이 될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 꼬뮨 안에서 안전하고 건강해야 하며,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행복을 느끼고 자아 발전을 위해서 노력할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것에 대한 종속도 최소한으로 유지되거나 철폐될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좋은 말이다. 누구나 꿈꾸는 내용들이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상향을 꿈꾸었다.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것이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1> 이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아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또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꿈꾸었던 칼 맑스가 유명하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이 좋지 않은 성적표와 함께 실패로 끝난 지금 오로지 경쟁력과 이기심에 기초한 자본주의만이 승리했다고 보는 것은 섣부른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내부에서 자본주의에 기초하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것은 아직도 가능하며,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전의 공상주의적 이상향을 꿈꾸었던 오웬, 푸리에, 생 시몽 등을 먼저 되짚어보며 꼬뮨 추구의 근거를 인간 고통의 이상 추구에서 찾고 싶은 욕심을 이기지 못했다.

로버트 오웬

오웬은 스코틀랜드 산중의 뉴 라나크 부락의 7층 공장에서 아동 노동 착취 해방과 교육, 11시간 이내 노동을 주장하면서 성공적인 공장 운영을 했다. 이 곳에서는 서로에 대한 규제와 강제가 아니라 자비심에 기초한 규율이 지켜졌으며, 정치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서로에 대해서 개입할수 있었다.
자비심이 넘치는 부인네들은 공장에서 아무도 고통스럽게 살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무받았고, 그러한 것에 개의치않는 냉혹한 공장주들조차 공장의 생산물이 매우 많고 번영한다는 사실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현재의 유한 킴벌리가 공익기업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 이상의 결과를 가지고 있었다.
오웬은 공장을 인수한지 10여년만에 성공적인 경영인이 되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대해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으나 오웬은 막상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배당의 근거로서 인간의 이기심이 아닌 자비심을 강조했고, 화폐 폐지론을 주장했다.
오웬에게 있어서 뉴라나크의 공장은 인간의 이기심이 아닌 자비심이 이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갈수 있다는 진리를 실험하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물론 실험은 대성공이었으므로 그는 전 세계로 자신의 공동체 양식을 확대하기를 원했다.

자본주의가 내포한 근본 모순에 의해서 생산 과잉과 대공황이 오자 사람들은 로버트 오웬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몸이 달았다. 그러나 의원 총회에서 오웬이 내놓은 안은 자신이 운영하던 바와 같은 공장 개혁안이 아니라 생산적 빈곤을 의도적으로 유지하는 빈자 공동체로 전체 사회를 재구성하는데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이 영국 노동조합과 소비조합 운동으로 이어져서 영국 노동당의 근간에 편입되었고, 옥스팜과 같은 소비운동의 뿌리를 만들어 준 것은 부정할수 없다.

생각난 김에 문국현과 로버트 오웬

말하자면 그는 자본주의 성장기의 문국현이었다. 현대의 대중들은 그를 통해서 이상적 공동체의 실현을 목도했고, 그 확장을 꿈꾼다. 문국현이 직면한 것은 당시 자본가들과 학자들의 비아냥이 아닌 직업적 정치가들의 밥그릇 싸움판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결과에 대한 댓가로서의 반대 급부이다. 그것이 창조한국당의 탈당론자들이 주장한 통합민주당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 되면 안되겠지만, 문국현은 좀더 큰 그림에서 자신의 이상론을 구체화시키고, 정치적 합의를 통해서 구현할 밑그림을 짤 필요가 있다.

생 시몽

생 시몽은 낭만적이고 의협적이면서도 광기에 서린 귀족 출신의 철학자였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종교적 열망으로 들떠 있었으며 모든 것을 알고자 했으나 정작 자기 앞가림을 할줄 몰랐다. 젊은 시절에 프랑스 혁명에 투신하여 이후에는 모든 철학자, 과학자, 종교인 등을 집으로 초대하여 그들과 먹고 마시고 토론을 하면서 젊은 시절에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말년에는 극도의 가난에 시달렸지만 그의 괴팍함에 질린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다. 그의 삶은 막장에 다다른 이후에도 2년이나 계속되었다.

......나를 구해 주십시오. 기아로 죽을 지경입니다. 15일간이나 빵과 물로 연명해 왔습니다……. 출판 비용 때문에 입고 있는 옷 외에는 모든 것을 다 팔아 버렸습니다. 내가 이 꼴이 된 것은 지식과 공공복리를 향한 열정, 전 유럽을 뒤덮고 있는 무서운 위기를 종결시킬 평화적인 방법을 찾으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별로 도와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죽은 이후에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괴한 종파가 생겨났다. 제자들은 사람이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혼자서 입을수도 벗을수도 없는 파란 옷을 입고 다녔다. 이후에 프랑스와 독일, 영국에 있던 생 시몽 교파의 교회는 의례주의로 타락하였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극히 우습지만 당시 이들의 복음은 '인간은 일하여야 한다.' 라는 것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노동자가 가치를 창조하며 이들이 가장 많은 가치를 받을 권리가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들은 그만큼의 댓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동 과정과 노동의 결과물을 노동자에게 주려는 이 야심찬 시도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 시몽의 사제들은 막연한 사회 비판에 기초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이들의 '그러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도 대답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샤를 푸리에

생 시몽이 위대한 사회 비판에 종속되어 있었다면, 푸리에는 사소한 것에 천착해 있었다. 푸리에의 삶 자체도 그의 사상처럼 사소하였는데, 평생 정원과 고양이를 좋아한 소상인이었다. 말년에 그는 허경영처럼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유명한 이들에게 보냈다.

지구는 상향선 4만 년, 하향선 4만 년 계 8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양 기간 동안에 행복의 절정 8천 년이 존재한다. 우리는 혼란, 만행, 족장제, 미개를 통해서 전진하여 온 발전의 8개 계급 중 제5계단에서 살고 있다. 이제부터는 보장시대가 시작하며, 그 다음에는 조화의 상향선이 놓여 있다. 완전한 행복에 도달한 후에 이 상하운동이 반전하여 모든 계단을 통해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조화시대를 더 깊이 파고들어 가면 새로운 사태가 발전하여 나온다. 북방 왕관은 고요한 이슬 빛을 머금고 북극을 중심으로 싸고돌고, 바다는 레모네이드가 되며, 낡고 고독한 위성 대신에 6개의 새로운 달이 지구를 돌고, 조화에 더 알맞은 새로운 종류 - 순하고 일 잘하는 반(反) 라이온, 배를 끌고 다닐 반(反) 고래, 반(反) 곰, 반(反) 빈대, 반(反) 쥐 등 - 가 등장할 것이다. 인간은 144세나 살 수 있으며, 그중 120년간은 제한 없는 성적 향락을 누릴 것이다. 다른 유성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그러나 그는 오웬과 마찬가지로 오웬의 협동농장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일종의 큰 건물의 공동체를 주장하였다. 중심건물, 농장과 공업시설이 배치된 그곳에서 모두가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어디든지 가장 좋아하는 곳에 자리 잡고 살 수 있으며 원하는 대로 개인 생활을 한다. 문화 생활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잘 혼합된 생활을 한다. 특히 그는 중앙 집중을 통한 능률 올리기를 위해서 공동 취사장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누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루에 몇 시간씩 노동하지만, 각자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므로 누구도 꾀부리는 일이 없어진다. 그러면 더러운 일은 누가 할까? 어린아이들이 할 것이다. 도살장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혹은 도로 수리를 기뻐하거나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더러운 일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꽃을 가꾸고 부모들의 틀린 발음법을 고치는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노동자들은 누가 일을 잘하는지 서로 경쟁하게 된다. 배 재배자들 혹은 시금치 경작자들이 서로 경쟁하고, 오믈렛 요리인들과 샴페인 주조자들이 일대 경쟁을 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얻는 이익은 막대할 것이며 이득이 30%까지도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촌락 전체에 대한 것이며, 이것은 다시 12분의 5는 노동자에게, 12분의 4는 자본에, 12분의 3은 능력에 분배된다. 모든 사람들은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부분 소유자가 되도록 종용한다.

이상하고 환상적인 것같이 보이지만 푸리에의 사상은 미국에서 뿌리를 박았다. 한때에는 미국 내의 화란스테르 공산촌의 수가 40개 이상에 달했고, 오웬파 부족과 기타 각종 종교운동집단을 합하면 각각 15명에서 900명의 회원으로 된 유토피아 집단은 최소한 178개에 달했다.

그들은 가지각색이어서 어떤 것은 종교적인데, 어떤 것은 반종교적이고, 순결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음탕한 것도 있고, 자본주의적인 것, 무정부주의적인 것도 있었다. 오하이오에는 트품벨화랑스, 롱아일랜드에 모던 타임스, 그 밖에 오네이다, 부룩함, 뉴이카리아 등이 이름났고, 1843년에서부터 1855년까지 지속하였고 1930년대까지도 반(半) 호텔 반(半) 공동체로 남아 온 뉴저지의 노드 아메리칸 화랑스는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이 꿈같은 공동체들은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푸리에의 화란스테르 공산촌만큼 현실로부터 유리된 것은 없었다.

인간은 과거의 꿈에서 미래를 밀어낸다

그러나 과거의 이상주의적 공동체의 실험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고 해서 그것들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들의 사회 진단과 비판은 정확했지만 그들의 처방은 모두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푸리에의 주장은 너무나도 황당해서 당시 맑스가 이를 비판할 정도로 주목했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에서 탈락한 자들이 꾸는 꿈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왔다고 하면 비약일까? 세계는 그 내재한 모순으로 인하여 자기 위기를 끝없이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는 꿈을 꾸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 꾸준히 극복될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이 더욱 더 아래에서 일어나고 실질적으로 검증받고 실험되면서 역사는 발전해 온 것이다.

꼬뮨을 현재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는 지금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수유+너머의 고병권 대표는 '다양한 존재들의 자유로운 협력과 소통을 발명하려는 이론적·실천적 노력'으로서 꼬뮨주의를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대중의 실체를 꼬뮨의 근간으로 파악가능한 역학적인 존재로 본다. 특정한 존재하는 실체로서 조작 가능하던 대중을 유기적인 흐름으로서 통합적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흐름 내에서 대중이 혁명의 주체가 될수 있다는 것은 대중을 파시즘의 주체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가능한 것이다. 박정수도 고병권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내에서 태어나서 자본주의 근본 자체를 부정하고 자본주의가 아닌 것을 욕망하고 만들어낼수 있는 사람들의 탈 자본주의 욕망을 긍정한다.

그 과정에서 그러한 실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꼬뮨이 필요하다. 타인을 설득하고 공명하면서 공동의 작업을 만들어나가고 그것이 서로 얽혀서 공동의 가치를 창출해나가는 기본적인 관계 속에서 혁명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기실 이러한 활동은 매우 기본적인 인간의 활동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혁명의 단초가 될수 있는 이유는 그 출발이 자본의 요구에 따른 수동적 욕구가 아닌, 자신 존재의 근원에서 생겨난 날 것의 강렬한 욕망에서 출발한다는 것에 있다. 이 야성의 날 욕망은 "돈이 있어야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으니 돈이 있어야 해. 내가 돈을 벌려면..." 과 같은 식으로 계산하고 따지지 않는다.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문명화되고 약아빠진 나의 욕구는 사실 자본의 요구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정제되고 걸러진 찌꺼기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사실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나의 일상과 나의 감정이 증명한다. 부모와 사회와 자본의 요구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공허하고 허탈한 느낌이 일상을 지배하는 회색의 도시에서 벗어나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공통의 욕망을 모여서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꼬뮨이란 것은 그러한 혁명의 물적 토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으로서 파악된다. 예를 하나 들자면 헤비타트 운동이 있다. 이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좌파가 아니고, 진보적이지도 않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은 이기심과 이윤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집을 지어 준다는 행위에서 이들은 자발적인 노동을 선택하고, 어떤 보수도 없이 행복감을 느낀다. 이것이 공동의 자산을 창출해내는 공동체적 행위로 변화할수 있는 체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단기 자원봉사이기 때문에 행복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자본주의적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발과 자율에서 출발한 노동으로 사회 공동의 자산을 창조하는 범위의 꼬뮨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히 알아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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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뮨의 크기

2008/02/25 20:50 from 꼬뮨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혼자 살면 외롭다. 후손을 남기기도 애로사항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동물들처럼 고독을 즐기다가 쿨하게 관계를 맺고 헤어지고 새끼를 키우다가 독립시키는 개인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구성하지도 못한다. 혼자 존재하는 인간은 무능하고 약하다.

인간을 그렇게 떼로 모여서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강해졌다. 모여 있는 두명은 따로 있는 두명보다 세고, 모여 있는 천명은 따로 있는 천명보다 천배 이상 세다. 인간은 그렇게 모여서 힘이 세졌고, 많아졌기 때문에 지구를 정복했다. 이제 인간이 너무 많아서 지구가 몸살을 앓는다. 땅 속 깊숙이 박혀있던 기름과 석탄을 파내고, 태워서 자기 좋은 일에 쓰고, 그 연기로 인해서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인간들이 많이 모이면 슬픈 인간들도 더 많아진다. 인간은 사회를 만들었고, 사회는 계급을 만들었고, 계급은 착취를 만들었다. 착취당하는 인간은 슬프다. 착취하는 인간이라고 해서 딱히 즐거울리는 없다. 원래 인간이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를 내재한 존재는 아니다. 그런데 착취하게 되었다. 구슬르거나 을러서 뺏고, 모으면 효율적이다. 한 인간이 만들어낼수 없는 많은 것을 다수가 모이면 다수가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슬픈 인간은 끝없이 생겨난다. 그래서 사회와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어나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적당히 모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꼬뮨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꼬뮨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꼬뮨이 너무 적으면 무능하고, 너무 많이 모이면 슬퍼진다. 배고프고 서럽게 울면서 살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닌데, 사람이 모임 곳에서는 꼭 어렵고 서러운 이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적당히 모여 살기로 한다면 몇명이 가장 적당할 것인가? 꼬뮨에 대한 고민의 맨 처음은 공동체의 물리적 크기를 고민하고 그를 통제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꼬뮨은 그 합목적성을 이루기 위해서 특정한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서 내부의 창조적 자산이 상속되어서 내려오면서 공유 심화 발전되어야 한다든가, 사회적 갈등을 외부적 제도가 아닌 구성원의 합의로 최대한 만족스럽게 해결할수 있어야 한다든가 등이다. 그 이외에도 공동체의 후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혹은 공동체의 유지는 영속적일 필요가 있는가 등이다. 단계적으로 층위가 낮은 꼬뮨이 종속적으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상이한 꼬뮨이 불특정하게 분포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상존한다.

꼬뮨의 크기는 10-20명 정도가 적당하다. 그 정도면 집중된 노동력으로 높은 생산력을 가질수도 있을 뿐더러 과도한 분업으로 인한 노동 소외 현상을 야기하지도 않는다. 꼬뮨의 구성원은 연령과 성별, 직능 등이 다양해야 하지만 가치관과 종교, 성적 취향, 언어 등이 과도하게 상이하면 유지가 어렵다.

지속적인 노마드의 방문 없이는 꼬뮨은 고립되고 부패할 것이다. 노마드는 항시 상존하는 2-10명이 적당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10-20명이 살면서 2-10명의 노마드를 끝없이 받아들일 여력은 있는 공간에서 2-4 가족 꼬뮨이 살아야 한다.

오늘의 고민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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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연탄불 시절을 떠올리며…
한겨울 더운물 쏟아지는 요즘 지구상 16억은 전기사용 못해
한집 한등끄기 에너지 절약은 나와 이웃을 살리는 에티켓

김창완 가수·방송인

2008.02.20

"얘야 연탄불 좀 갈아라. 구멍은 세 개만 맞춰." 열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19공탄. 그 열아홉 개의 구멍 중에 세 개만 위아래가 맞게 밑불 위에 새 연탄을 올려놓으라는 게 어머니의 주문이었다. 겨울이면 늘 그러셨다.

위아래 연탄구멍이 잘 맞춰져 있으면 탄불이 빨리 타서 새벽녘에는 불이 꺼져 버렸다. 그렇게 되면 아침부터 이웃집에 불을 빌리러 다녀야 했다. 연탄불이 없으면 방이 냉골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밥을 지을 수가 없었다. 불은 늘 귀했다. 불 마개를 여닫는 것은 아낙의 고유 권한이었다. '뽑기'를 해먹는다고 번잡을 떨다 마개를 안 닫아서 연탄이 많이 타버리면 시커멓게 된 국자보다 탄불이 아까워서도 등짝을 한 대 더 맞아야 했다. 불을 늘 꺼질 듯 말 듯 하게 해놓았으니 머리맡 물 대접의 물은 얼어붙기 일쑤였고 아주 추운 날은 요강이 얼어 터지기도 했다. 집이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옷도 무명옷이 대부분이어서 보온성이 형편없었다. 겨울 솜이불은 두껍기만 했지 어깨 쪽이 들떠서 누가 풀썩거리기라도 하면 찬 공기가 구렁이처럼 기어들었다. 방안 공기가 차니까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서울의 전깃불 100개 중 40개가 원자력 발전으로 켜지는 지금, 연탄 때던 시절을 아련히 떠올리는 것은 아직 손가락, 발가락을 노끈으로 동여매는 듯한 추운 날의 통증이 기억 어디엔가 남아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2008년 고속도로. 버펄로 떼처럼 차들이 지축을 흔들며 지나간다. 연탄 한 장으로 승용차가 한 2㎞ 남짓 달릴 수 있다. 하루 40㎞를 운행하는 사람이면 연탄 스무 장을 태워 버린 거다. 하루에 연탄 석 장. 연탄 200장이면 한 가족이 겨울을 났다. 이제는 서울서 부산 한 번 가는데 그만큼의 에너지를 쓴다. 물 대접이 얼어붙던 윗목이 없어진 아파트에선 한겨울에도 다 벗고 산다. 뜨거운 물이 언제나 쏟아진다. 마치 아파트 바로 밑에 용암이라도 있는 듯이. 공항에는 움직이는 길이 깔려 있고, 건물마다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가 지천이다. 도시를 밝히고 있는 가로등은 해가 떠야 지고, 대낮에도 휘황찬란한 빛을 쏟아내는 전광판은 네온사인을 금지했던 시절을 비웃고 있다.

풍요롭다. 화려하고 찬란하다. 하지만 세계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인구는 약 65억명 가운데 약 75%뿐이다. 나머지 25%인 약 16억명은 전혀 전기를 사용할 수가 없다. 집 근처에 나무가 전부 없어졌기 때문에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카르사카에 있는 마을의 여성들은 한 주에 수차례 땔감을 찾으러 4시간을 계속 걸어야만 한다. 선진국의 일상생활이 난민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른 존재의 행복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윤리적으로 사는 것은 가능하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당신이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오늘 거리에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죽을 거라고.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누구에게라도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묶여있다"고 '종교의 종말'의 저자 샘 해리스는 말했다.

무절제한 에너지 낭비로 이웃을 피폐하게 하고 결국 생명의 요람인 지구를 병들게 한다면 우리 스스로 난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라지는 동물과 식물의 도감이 해가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다. 매해 국제적인 규모의 환경회의가 열리고 매스컴이 총동원되어 지구 온난화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환경파괴 위협은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이 버튼에 손을 대고 있는 까다로운 문제다. 엘리자베스 2세가 마차에서 내릴 때 그녀의 발 아래 있는 진창물 위에다 자신의 망토를 벗어서 깔았다는 월터 롤리(16세기 영국의 정치가)의 갤런트리(gallantry·여성에 대한 공대)가 기사도 정신의 발로였다면 한 등 끄기는 에티오피아의 고단한 아낙의 하루를 위로하는 당신의 아름다운 헌신일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은 이웃의 고통을 체험하고 이해하는 수단이다. 나아가 이웃과 나를 살리는 도덕적인 행위이다. 21세기의 에티켓은 에너지 절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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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나 갈 목사들

2008/02/20 16:28 from 잡담
터져서 진물이 흐르는데도 침묵하는 자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잘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일부 개신교 목사들과 그 목사들의 추종자들의 행위는 더욱 추해 보인다. 인터넷 여기저기가 개신교 비판으로 들끓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말이 없다. 이 험난한 고난의 시기가 지나면 더욱 큰 복이 올거라 믿는 탓이다. 그러나 저지른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는 것이라야말로 사단의 사주로 인한 행동이다. 조금만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목사들의 대형 비리와 교회 세습, 부정부패, 망언, 오만방자한 행동들에 대한 자료가 넘쳐나게 되었다. 한때 세상을 구원하리라던 예수님의 뜻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이렇게 썩어흐르게 된 것은 어디서부터인가?

반공 자본주의와 종미주의로 이식된 한국 교회사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저급한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 기복 신앙과 결합하여 인간적인 세상보다는 통장 잔고와 승진, 대박을 기도로 삼는다.
교회는 하느님 대신에 돈을 섬긴다. 교회를 가장한 체인점들이 여기저기서 난립한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정과 함께 이식된 교회는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했다. 오늘날 대형교회 중 하나인 영락교회가 그러한 방식으로 성장했다.
1950년 7월 3일 피난지 대전에서 한경직·김병섭·황금천·손두환·임병덕 등 교회지도자들은 대한기독교구국회를 결성, 전선을 따라다니며 남한 국군을 선무하고 기독청년을 모집, 전선으로 내보냈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다음 날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수복기념회에 '하나님 은혜로 싸웠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수복하게 되었다'고 믿는 기독교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대거 참석하였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남한 교회는 대중집회를 열어 미국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 등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채택, 전달하였는가 하면, 빈번히 부흥회를 열어 전쟁 승리를 열렬히 기도하였다. 전쟁 과정과 그 이후에 남한 교회에 나타난 물량주의·기복신앙·반공주의의 세 가지 특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북화해나 남북협력의 시대에 이 세 가지 특성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출처:뉴스앤조이)

   
▲ 한국기독교 안의 뿌리깊은 반공주의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6·25전쟁을 계기로 한국교회 안에는 반공주의, 기복주의, 보수주의 성향이 짙어졌다. 사진은 지난 해 6월 기독교가 개최한 반공대회. ⓒ뉴스앤조이 신철민


교회 세습과 사유화의 거두 조용기 목사

교회는 분명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순복음교회는 조용기 목사의 것이다.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하는 세태에 대한 지적은 계속 있어왔으나 정작 당사자의 말은 없다. 조용기 목사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다.

-"만약 나와 아들이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러난다. (중략) 내가 65살 먹은 나이에 마지막 마무리를 하려는 중인데, 돈 때문에 내 일생을 공중에 내버릴 만큼 바보천치는 아니다.”
(신동아 2000년 10월호, 교사모 소속 장로 출교건과 관련한 인터뷰 중에서, 이듬해 아들인 조희준 당시 스포츠투데이 회장은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탈세(25억원)와 횡령(183억원) 혐의가 포착돼  구속됐다.)

-"분명히 (2년 후에) 은퇴합니다. 순복음교회를 이끌 후계자 목사도 고르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2004년 3월 4일자, 하와이에서 인터뷰 중)

-"내년 중에 은퇴하겠다”
(2005년 1월, 교회 실행위원회 중 발언)

- “하나님께 (시무연장)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응답 받지 못했다”
(2005년 11월 20일, 교인들의 시무연장 요청결의가 있은 후 주일예배 중 발언)

-"장로들에게 ‘물러나고 싶다’고 하니까, ‘이제 와서 책임 안 지고 물러나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런 법이 어디 있냐 하면서 단호하게 말한다. 어쨌든 장로들과 좀 교섭을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2005년 12월 2일, 기독교신문과의 인터뷰 중)

-“성도님들이 99.8%의 지지율로 시무 연장을 찬성한 것은 저의 47년간의 목회활동을 인정해 준 것. 여러분이 요구하신 대로 75세까지 목회하겠다”
(2006년 1월 1일, 송구영신예배 중 발언)


걸어다니는 인간 망언, 전광훈 목사

이 양반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것이 없다. 이명박 생명책 발언.

대선은 할 것 없어. 올해 12월 달 대선은 무조건 이명박이 하는 거니까, 장로님이니까. 만약에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안 찍는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 (교인들: 웃음)
생명책에서 안 지움을 당하려면 무조건 이명박 찍어. 알았지?
(교인들: 아멘)
알았지?
(교인들: 아멘)
이명박 장로님 나한테 약속했어. 개인적으로 꼭 청와대 들어가면 교회 짓기로.(잘 안 들림)박수 쳐, 박수쳐.

청와대 교회 발언.

그런데 처음부터 교회 짓는다 하면요, 불교인들이 또 반발한다고. 나는 교회 장로입니다. 내가 주일날 저 한강을 건너 압구정동 소망교회까지 가는데, 전투경찰들이 주일날 경호하느라, 약 1000명이 몇 명이?

(교인들: 1000명이요.)

일요일 날, 주일날 쉬지도 못하니 나는 그들을 안 귀찮게 하기 위해서 청와대에서 예배를 드려야 될 터.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드릴 장소가 있어야 되니, 처음에는 교회 짓는다 말고 종교관 짓는다 해야지. 종교관 짓는다 해놓고 중간에 다서 십자가 달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시민단체고 뭐고 싹 잠재우고, 세우면 돼.

(교인들: 아멘)

할렐루야지.

(교인들: 아멘)


빤스 젖꼭지 발언.

그렇게 되기 원하시면 아멘. 할렐루야. 손뼉 준비.
우리 교회도 보면, 당회장실에 나하고 상담하러 오면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 입으면 빤스가 다 보여요. 다 보여. 그럼 가려야 할 것 아니냐. 그런 거 없어. 아멘하는 년 하나도 없네. 아멘 해봐(사람들: 아멘).
 

한 여름철 큰 교회에 가봐. 큰 교회는 강대상이 높아. 강대상에서 앞에 앉아 있는 년들 보면 젖꼭지 까만 것까지 다 보여. 그럼 돼? 안 돼? 대답해봐(사람들: 안 돼요).

국회 점령 발언.

전 목사는 지난 23일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청교도영성훈련원에서 자신의 창당과 관련한 비난 여론을 정면 반박하면서, "예수님 나라 만들기 간단하다"며 "국회를 100% 점령하고 299명 다 채워서 예수 안 믿는 놈은 감방에서 5년, 얼마나 좋아, 내가 군사독재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생각이 보통 독재가 아니다"라며 잇단 망발을 내뱉은 것.
또한 "끝까지 예수 믿으라고 해서 안 믿으면 섬을 하나 정해놓고 중들을 집어넣고 헬리콥터로 컵라면만 떨어트리자"며 "예수도 안 믿는 인간들이 왜 살어"라는 등 지나치게 기독교 중심적인 막말을 쏟아냈다.

안타까운 망언 2위, 김홍도 목사

이분에 대한 자료는 안타깝게도 단적으로 된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이분의 만행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 불륜 관련하여 고소 고발 많이 당하셨나 보다.

“교회 일을 세상법으로 재판하면 안 걸릴 교회 없어”
“세계적 대교회 목사가 10억 못 만들어 교회 돈 횡령하겠나”
“불륜? 근거라고는 그 여자 입밖에 없다”
“법정에서 ‘불륜 고백’ 인정한 건 변호사의 잘못된 코치 때문”
“신앙 없었다면 자살했거나 몇 놈 쏴 죽였을지도”
“감독회장 선거 때 돈봉투 돌린 건 관행”
“예배시간에 ‘장로 후보’라고만 하지 이명박 이름은 거론 안 해”
“‘아들 목사’ 후임자 추대는 세습 아닌 교인들 총의”
“여자 문제, 돈 문제? 천주교, 불교는 훨씬 더 심해”
대법원 판결문 “교회와 목사는 별개”
유모 장로 “고소 취소 조건으로 10억 제의 받았다”

그외 이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실수들

2003년 미아뉴타운 예정지에 무허가건물을 1억 여 원에 구입한 L목사는 투자의 귀재다. 이철용 전 의원으로 인해 일명 ‘꼬방동네’로 알려진 미아6구역이 재개발된다는 정보를 이용해 재빠르게 해당 지역 안에 교회 간판을 걸었다. 그리고 투자자들을 모아 시유지를 불하 받아 약 90 여 평의 땅을 확보했다. 총 투자된 자본은 4억 원 미만이었다. 이후 L목사는 형식적인 신도들을 위장전입 시키는 등 보상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구사했다. 드디어 2005년 개발이 확정되자 L목사는 상가 122평을 불하받는 조건으로 재개발 조합 측과 타협함으로써, 최소 20억에서 최대 40억에 달하는 보상을 손에 넣게 됐다.
인천 논현지구에서 100평 정도의 교회를 운영하던 유명 부흥사 J목사는 교회일대가 신도시로 개발되자 630평에 이르는 종교부지를 약 30억에 불하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종교부지에 교회를 짓지도 않았고, 불하받은 땅을 59억에 대형교회에 매각했다. 전목사는 소위 전매를 통해 30억 가까운 돈방석에 앉게 된 것이다. 그는 최근 건설사업체를 설립한 사위와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J목사는 교회를 열었다고 주장하지만 명색이 교회일 뿐, 사실은 J목사 개인 사무실 정도다. 종교 부지를 전매해 얻은 30억 여 원은 J목사 수중에 고스란히 넘어갔고, 교회와 성도들은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비상식적인 종미, 멸공 정치 목사들, 대규모 신자 동원해 극우 집회

▲ 2003년 6월 21일 오후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국민대회'에서 15만여명의 참석자들이 한국전 참전국들의 국기와 태극기, 성조기의 입장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을 사랑한다"
"전교조와 같은 좌익단체를 진멸해야 한다"
"사탄의 정권인 김정일은 붕괴되어야 한다"
"이 땅의 공산당과 간첩들의 모가지를 다 잘라 주소서"
(6.25 국민대회)

"김정일의 핵폭탄 위협으로 이 나라가 공산화 통일되어 7000만 명이 악독한 김정일의 독재 하에서 고통당하다 죽는 것보다, 50만명·100만명이 죽는 한이 있어도 김정일과 핵폭탄과 미사일을 깨뜨려버리는 편이 더 낫다고 봅니다. 전쟁이 언제나 나쁜 것이 아닙니다."(금란교회 홈페이지에서)
"우리나라가 미군이 지켜준 다음부터 평안히 잘 살아왔는데 미군철수는 곧 경제·정치·자유민주주의의 몰락이다"
"북한 동포의 비극적 생활과 교회의 완전 파멸을 막기 위해서 6월 21일 구국기도회에 전 교회가 총궐기해야한다"

지쳤다 더 이상 찾기도 지겹다 끝도 없이 계속 나온다

예수님은 당대 지배체제에 맞섰다. 그는 특정한 거처가 없었으며, 자식을 남기지 못했고, 가장 가난했으며, 돈과 권력과 건물이 아닌 사람과 사랑과 가르침만을 남겼다. 그러나 이 목사들 중에서 죽은 이후에 사랑과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만을 남기고 사라질 목사는 과연 누구일까? 없다. 이 목사들이 죽으면 전과 기록과 고소고발 기록과 막대한 유산과 세금과 논란과 정쟁과 싸움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지옥 간다.

지옥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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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후예

카터 에커트 지음, 주익종 옮김 / 푸른역사 / 2008년 02월

식민지시기를 제외시키고, 조선 후기로부터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타당한 것인가? 전적으로 한국사의 내부에서 발전 요인을 찾으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의 문제작.

지은이는 일제하 전라북도 고창 출신 김성수,김연수 일가와 경성방직의 성장에서 한국자본주의의 기원을 찾는다. 즉 중소 직포업체로 출발한 경성방직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원과 협력으로 만주와 중국 본토에서까지 사업을 펼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눈부신 발전과정에서, 현대 한국 자본주의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에커트는 한국에서 근대화의 기동력이 외부에서, 곧 일본제국주의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그는 광의의 식민지근대화론의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일제하의 한국인 자본을 일본 제국이 낳고 길러주고 그를 따르는 존재로서 그렸고,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제국의 후예’라 지은이는 칭하고 있다.

카터 에커트 (Carter J.Eckert) - 하버드와 로렌스 대학에서 서양고대사와 중세사를 전공했으며, 워싱턴 대학교에서 일본사와 한국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에서 한국 현대사를 강의했으며, 1994년부터 현재까지 하버드 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직과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Korea, Old and New: A Historical Perspective on Contemporay East Asia> 등이 있다.

주익종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성균관대와 경희대 강사 등을 지냈고, 현재 서울신용평가정보(주)에 신용평가 담당 이사로 근무중이다.

일제 강점기 중의 자본주의적 변혁 이야기가 이 책의 핵심이 된다. 나아가 이 책은 강점기 이전과 특히 해방 후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에 관한 더 크고 긴 논의에 함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 이야기에는 토지 재산에서 공업적 재산으로의 전환의 개시, 강력한 발전국가의 출현, 초기 부르주아지와 노동계급의 등장,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전쟁과 전시동원이 초래한 사회경제 변화 등의 다른 많은 관련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 카터 에커트



간단하게 말해서 고교 국사 교과서에서 흔히들 말하는 것과 같이 조선 시대 말기 부터 자본주의의 맹아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식민지 시대에 주춤하였다가 해방 이후부터 자본주의적인 발전이 승계되었다는 단절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에커트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가 자본주의와 서구의 선진체제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조선에 선진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할수 있었던 계기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에커트 교수는 “한국사회의 실제 변화의 기동력은 일본에서 왔으며,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한국의 자본주의적 변혁과 근대화를 촉진했다”고 주장합니다. 박정희 시대 한국의 고도 성장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그 기반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경제는 일제시대의 결과물에서 출발한 것이 됩니다. 그것이 원조격인 "잃어버린 10년" 시대인 1950년대를 건너 뛰어 박정희 시대에 와서 만개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굳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미국 학자나 국내 역사학계의 논쟁에서 찾지 않아도 우리는 경험으로 이러한 주장을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습니다.

"6. 25 때 일본 놈들이 지어 놓은 공장이
모두 부서져서 맨손으로 일궈냈다."
"솔직히 하는 말이지, 일본 놈들이 공장 짓고
장사 한 것 다 따라 한 것 아닌가?"
라는 말을 저는 아버지 세대들의 이야기에서 숱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일견 국수주의적이면서도  경험에서 기반한 팩트에서 출발합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출발한 우리 역사를 맘에 들지 않아하지만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고대사도 아닌 현대사를 규명하는 일은 어려우면서도 쉽습니다. 자료와 증언 등의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는 질료가 풍부한 반면에 정치적인 이유와 집단적인 정서 등으로 인해서 편향된 쪽으로 재구성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담론이 중요한 이유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아서 건국 이념과 국가의 정통성을 논하는데 있어서 대한민국 초기의 시작을 무엇에서 보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이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시작을 열어낸 이승만과 경제 성장과 독재에서 평생 벗어날수 없는 박정희로 이어지는 현대 정치의 시작을 무엇으로 규정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담론을 가장 정치적으로 잘 이용한 사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2005년에 발행한 "한국 근대화 기적의 과정"을 발간하면서 에커트 교수를 대표적인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이면서 박정희를 찬양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국 근대화 기적의 과정
저   자 : 조이제․카터 에커트 편저
펴낸곳 : 월간조선사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584  쪽
출판일 : 2005년 02월
 
에커트 교수는 박정희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일본 제국주의가 이식한 자본주의의
연속성을 성공적으로 일구어낸 자본주의의 전도사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박정희
는 조선일보가 좋아하는 자유민주주의라든가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먼 독재정치
를 하면서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체제를 이끌었습니다. 이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특질과도 맥락이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단지 반공을 주도적 이념으로 내세우
면서 서방의 지원을 받아서 60년대 후반에 북한보다 뒤져 있던 경제를 추월하게
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건데 박정희는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국가로서의 대한민국보
다는 대한민국을 하나의 고정적인 조직체로 보았다는 면에서 국가 공동체의 운영
보다는 조직 관리의 하수인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듭니다. 가난한 시절에 태어
나서 경제적 부와 정치적 권한을 누구보다도 동경하면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서 힘썼지만, 그 열매는 분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파를 잔인하게 숙청하
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신 정치를 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동경하던 다카키 마사오의 일장춘몽, 그가 남긴 독재 하수 정치의 유산이라고나 할까요.

그가 일구어낸 경제 성장의 성과물을 폄하할수는 없지만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로
울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박정희를 정치적 편견을 떠나 자유롭게 논할수 있는 사
람이 한국 사회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중에서 과도하게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논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문제입
니다. 에커트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 논쟁을 정치적 입장에서 추종하는 서울대
이영훈 교수와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유명하신 조갑제 할아버지도
빼먹으면 안되겠죠. 안병직 교수도 있고, 또 누구더라. 뉴라이트를 표방하시는
분들 중에서 이런 분들 많습니다. 대표적인 논객인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
수의 뒤풍당당한 사진 두어장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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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 사과하는 이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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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를 재평가하는 교과서 발간을 추진하다가 멱살을 잡히는 이영훈 교수


 
뭐 대충 이런 식입니다. 에커트 교수 또한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정확한
팩트를 재배열해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듯한 전문가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네요. 뭐 저같은 찌질이 블로거가 그런 위대한 학자를 까대면 안되겠지만
이번에 출간된 책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오늘자 조선일보 칼럼을 보면 조선일보 측의 논리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좌파
정부는 대한민국의 과거사를 독재로 매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위에
서서 이끌어나간 역사에 대한 조금의 저평가도 거부하면서 노무현 자유주의 정
부를 좌파라고 합니다. 가진 자들에 대한 승리의 기억만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
소외된 이들을 함께 품고 나갈수 있는 가슴은 없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에서 이어진 박정희 독점기획경제체제의 옹호자들이 이명박 정
부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이 아닌 역사를 보다 많
은 사람들이 알고 배우고 느끼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커트 교수
의 논리를 옹호하는 자들이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위상부터 다시
짚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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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동났다

2008/02/20 11:19 from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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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 라면. 천자문인지 동의보감인지 한자 책 한 가운데 하얗게 밝아오는 "푸"자가 보인다. 정겹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라면은 뭐니뭐니 해도 매운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농마음의 푸라면이다. 푸라면은 모든 면에서 무난한 한국인의 취향을 노린 라면 라인업 중에서도 단연 발군이다. 푸라면의 건더기 스프 중 말린 버섯의 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요즘은 그 냄새가 그렇게 심하게 나지는 않는다. 건조 과정에서 향이 적절히 나도록 개선을 거쳤음에 틀림이 없다. 농마음의 푸라면은 그렇게 주력 효자 상품으로 한국인에게 자리잡았다. 지금도 농마음의 연구소에서는 같은 가격에서 푸라면을 좀더 맛있게 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몇 달전 MSG가 그렇게 문제가 되자마자 각 회사에서는 일제히 MSG 무첨가라면을 출시했다. 푸라면도 그랬다. 물론 MSG는 자연재료에서 흔히 발견되는 성분이다. 버섯이나 해조류 등등 단백질이 포함된 모든 식품에는 아미노산이 있고,  그러한 식품의 MSG는 자연스러운 감칠맛을 낸다. 문제는 그간 식품 회사에서 자연스런 감칠맛을 내기 위해서 화학적으로 조제된 MSG를 부어넣었다는 데 있다. 미원이나 감치미, 맛소금같은 것이 대표적인 MSG다.

인체는 자연 식품에 존재하는 MSG 와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MSG 를 구분하지 않고 잘 소화해내기는 한다. 그러나 수많은 동물실험(MSG 먹고 죽어간 흰쥐들 지못미)에서 MSG 는 신경 전달 체제에 이상을 일으켰다. 아직 인체에 무슨 이상을 일으키는지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MSG 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식품 회사의 이윤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모르고 먹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뒤쪽의 비닐을 보고 글루타민산 나트륨이라고 되어있는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탕처리식품, 특히 감자칩이나 치토스류의 옥수수 바베큐맛 스낵 같은 것을 끊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 식품에 큰 원한은 없고, 남들이 먹는 것을 말리지도 않지만 굳이 내가 돈 주고 사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혼자 살다보니 과자류를 자연히 먹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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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MSG 얘기를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원래 한가지 주제에 꼴리면 삼천포로 가든 어디로 가든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는 사람이 나다.

MSG 파동이 있자마자 재빠르게 MSG 무첨가 라면을 속속들이 출시하는 식품 회사들을 보면서 난 화를 냈다. 그전부터 첨가하지 않고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굳이 바꾸지 않은 것이다. MSG 를 첨가하기 전과 후의 맛은 달라지지 않았다. 원가 절감의 이유이든 무엇이든 그런 식으로 먹는 것 만드는 업자들을 신뢰하기라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힘든 일이다.

난 라면을 자주 먹지는 않는다. 주말에 한두번 밥하기 귀찮아서 오전에 끓여먹을때도 있고, 주중에 사무실에서 저녁을 간단히 라면으로 해결할때가 있다. 일주일에 두개 정도 먹는다고 보면 되겠다. 한때는 한번에 두개씩 먹기도 했지만 과식을 일부러 하지는 않기 위해서 요즘은 한개만 끓여먹는다. 그래도 짜파게티를 두개 끓여먹고 싶은 아쉬움은 이기기 힘들어서 두개를 끓여먹기도 한다. 국물이 있는 라면이라도 한개만 먹으면 조금 모자란다. 그러고도 밥말아 먹으면 항상 배가 불러서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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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파게티. 한개 먹으면 아쉽고 두개 먹기는 뱃살이 걱정스럽다. 그래도 보통 두개를 먹는다. 먹고 후회한다. 반복적인 반사작용이다. 마치 파블로프의 짜파게티같다.



라면을 먹어서 그런지 라면을 먹으면 항상 과식을 해서 그런지 라면을 먹은 다음날은 피곤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알면서도 먹는다. 담배나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몸에 나쁘면 안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와중의 즐거움을 버리지 못해서 누적된 결과의 책임에 힘들어한다. 과식하고, 과음하고, 담배를 피고, 잠이 안와서 무엇을 하느라고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그러고도 출근을 안할수는 없으니 출근은 제때 한다. 낮이 되었으니 당연히 몸은 깨고 정신을 말짱하지만 세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하면 멍하다. 그상태에서 글을 쓰면 가끔 좋은 글이 나올때도 있지만, 글을 쓰는 일이 그런 우연에 기생하면 안된다.

라면은 그런 이유로 한국인의 현재를 반영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낮은 가격과 편리성 때문에 널리 퍼졌고, 대량생산 체체가 만들어졌으며, 우지 파동과 팜유 논란, MSG 논쟁을 거쳐서 지금의 사재기 판국까지 왔다. 문제가 많고 말도 많지만 이토록 일상과 깊이 천착해 있는 단일한 소재는 드물다.

그런 라면이 중국의 밀가루 가격 인상 때문에 값이 오른다고 한다. 중국인의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빵과 피자 등의 밀가루 음식 소비량이 많아져서 그런 탓이라는 경제 신문의 어설픈 관측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중국인의 식생활이 서구화되기보다는 중국의 경제 개발로 점점 더 많은 세계의 자원이 중국으로 빨려들고 있는 추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 피자 집이 밀가루 치즈 가격 인상으로 울상을 짓다 못해 폐업한다는 뉴스도 간간이 들린다.

주택가와 사무실 밀집지역에서 너무 많은 배달 가게가 생겨났다. 편리함에 길들은 사람들이 수요를 창출해내다 보니깐 공급이 몰리고, 과다 경쟁으로 폐업하는 가게가 생겨난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과도하게 벌고 먹고 쓰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중국인들은 15억명 쯤 된다. 중국과 인도가 미국과 같이 펑펑 쓰고 먹고 마셔대는 식으로 개발이 되고 있다. 무서운 세계화다. 50억이 그렇게 소비하면 지구가 과연 버틸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과도하게 살이 찌고 씩씩대고 뒤뚱뒤뚱 걸으면서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가서 걷지 못하게 되고, 누워서 지내면서도 탐욕을 버리지 못해서 줄이지 않는다. 몸의 비만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의 비만증 이야기다. 당장 마음 속의 기름기부터 걷어내야 할 사람들이 몸짱이니 얼짱이니 껍데기를 다듬고 앉아 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이 넘쳐난다. 조금만 손해를 보아도 큰일이 난다. 특히 경제 결과물에서 소외된 이들의 분노와 미련스런 욕심은 정말로 대단하다. 이명박 정권이 경제를 개발하고, 더 살을 찌우면 자신에게도 윤기가 돌아올 것이라고 착각한다.

라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나이든 사람처럼 이러쿵 저러쿵 세상이 어쩌구 저쩌구 했다. 삼천포로 잘 빠지는 날은 그저 얌전히 몸 사릴 필요가 있다. 그래도 글은 쓰기 시작했으니 마저 써야 한다.

난 라면을 일주일에 두번 정도 먹는다. 라면을 먹으려면 사실 그 정도가 평균일 수도 있겠다. 라면 값이 오른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 중 일부가 마트로 슈퍼로 득달같이 달려가서 라면을 동냈다. 하루에 라면을 세개네개 쳐먹을 것도 아니면서 박스 채로 사갔단다. 남들처럼 영악하게 라면 사재기 안하면 손해 본다. 라면 사고 싶을때 라면이 없고, 가격이 오른 라면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라면 사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둘에게 물어보았다. 뜬금 없는 질문이라 다들 명쾌한 해석이 나오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라면 사재기가 맘에 들지는 않고, 사재기가 천박하고 남에게 손해를 주는 행위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그래서 결국은 삼천포로 가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귀찮아도 밥을 먹어야겠다. 요즘 라면을 너무 자주 먹었다. 이제 내 마음 속의 양은냄비도 불을 끄고 잠시 내려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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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다운 갈색 멀미 나는 여성을 위한 헤어드라이어는
암만해도  샤넬 넘버 씨리즈 별로 장탄 시킬수 있는
레일건  처럼 생겨먹은  드라이가 ㅤㅈㅛㅎ겠죠.
스프레이로 뿌리면  머리가 떡지니..
인텔리 한 여성이   떡진 머리 허거 댕기믄 좀 그려. ^^
열선 가화 방식으로  뿜어  머리 말리면서  향기 밸정도의  ㅂㅑㅇ향성  ORZ
얼마나 멀리 퍼지느냐의 레벨수치값에서 적당한 흡착량이겟쥐.
흡착 효과를 적당히 해줄수 잇다믄..  일롸 여대 앞이서  달곤희 ㅤㅎㅛㅇ님덜
모아가  팔 믄  매출은 걱정 안해도 ㅤㄷㅙㄹ듯 싶소.
미사에서 꼬셔 낼수 잇는 전략은  샘플링 상품의   것에서
맞춤 생산으로
얻어다가 쓸수 있게 나눠줄  용량이면 족허거
사회 초년 직장여성이
미안해서 으쩌다 한개 사갈 까 말까 할  정도의 매출량 적인거만
재믄
고정고객은  낚을수 있을듯 싶소.
남자 대학생덜은 이거 선물 해줄라거  녹아 다를 뛸지 몰겟습니다.
가카.!
경제를 살리실라거 애쓰심ㅇ에..




이런 글을 발견했는데 뜻은 모름.
인터넷에는 정말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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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교 등록금이 많이 올랐나 봅니다. 제가 졸업할때는 220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굳이 기억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것이 사실 졸업한지 4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립대라서 비싸다고 투덜거리고, 부모님의 돈 없다는 한숨도 감내하면서 겨우겨우 없는 돈 빌리고, 있는 돈 털어가면서 졸업했습니다. 학자금 대출 아직도 갚지 못한 것을 형님이 빌려준 돈으로 근근히 다 갚았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형이 "너 빨리 돈 벌어서 4억 갚아라." 이럽니다. 사실 시중에서 사채로 빌렸으면 금리 계산해보면 비슷하기도 하니깐 크게 농담도 아닙니다. 전 다행입니다. 등록금 대출 받고, 가족이 대신 내주어서 지금도 돈을 크게 벌지 못하고 있지만 빚을 지거나 밥을 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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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등록금은 한 학기 500만원 정도 한다고 합니다. 서울에 있는 명문대부터 지방에 있는 소위 성적이 낮아도 들어가는 대학교까지 모두 골고루 등록금이 그렇습니다. 성적은 달라도 등록금은 공평한 참 좋은 세상입니다. 하나라도 공평한게 있기는 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보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님께 건방지게 반말로 등록금을 내라는 이 대학생은 몹시 철이 없습니다. 내라고 해도 절대 내줄 분이 아니거든요. 그분 돈 낼 곳 많습니다. 전재산 사회 환원도 해야 하고, BBK 피해자들에게 푼돈이라도 조금씩 주면 이런 대학생의 사소한 푸념 같은 것은 들어줄 분이 아닙니다. 어디 감히 바쁘신 분들에게 와서 등록금 타령입니까? 이 학생 참 철이 없습니다. 이럴 시간에 경쟁력 강화하게 테솔이라도 배우려면 테솔 교육비 벌어야 합니다. 350만원쯤 한다고 했으니깐 지금 어디 호프집 가서 알바라도 해야 할 시간인데, 팔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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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녀서 죄송합니다." 랍니다. 하기야 대학 다니려면 부모님에게 죄송한 줄은 알아야 합니다. 자식 둘 대학 보내려면 1억은 있어야 합니다. 40,50대 부모님들 태반이 돈을 벌지 못하는 나라에서 대학 보내는데 등록금만 5백만원 나오는 형편 제대로 감내할 부모님들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교 보내려면 한달 생활비 100만원은 줘야 합니다. 하숙비만 해도 4-50만원이거든요. 백만원 가지고 살아도 끼니 때우고 책 사고 하다보면 빠듯합니다. 그래도 알바 안하고 1학년때부터 학점 관리해서 좋은 학과 들어가서, 영어 공부도 하고,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3,4학년때는 미친듯이 취직 준비 하려면 그정도가 기본 스펙입니다. 그거 못맞춰주는 부모님들은 대학교 보내면 안됩니다. 이 학생들 미안해 해야합니다. 부모님 등골 휘게 안하고 고졸로 평생 보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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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등록금 내기도 힘들고, 대학교도 공부만 하려니깐 팍팍하고, 취직도 힘들고, 언제까지 남들과 비교당하는 인생, 피곤해서 목숨 끊은 젊은이들 많습니다. 요즘은 수능 보고 비관해서 죽는 학생들도 늘어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평한 것이 또 있었네요. 자살률은 모든 세대에게 평등합니다. 농민들은 농사 안되서 FTA 근심에 농약 마시고, 젊은 학생들은 돈 없어 학교를 못 다녀서 자살하고, 그정도 되는 세상에 시위 하려면 자기 영정 사진 정도는 들고 와야 합니다. 그래도 인수위 분들은 바쁘시니깐 함부호 방해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이분들 이미 언론과 여론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분들입니다. 강화도에서 장어 좀 먹었다고 9명 중에서 2명이나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덜덜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릴 생각은 안하고 이렇게 팔자 좋게 공부 하기 싫어서 시위하는 학생들은 혼이 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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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동결하라고 합니다. 500만원이나 되는 등록금도 그대로 낼 용의가 있으니 제발 더 올리지만 말아달라고 합니다. 역시 요즘 젊은이들은 깡이 없습니다. 차라리 등록금 삭감이나 등록금 분쇄 같은 구호 들고 나오면 시원한 맛이라도 있겠지만 이렇게 힘없이 나오면 바쁘신 분들이 들어드리기에는 너무 밍숭밍숭합니다. 대학교에 있는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바쁘신데 이런 개량적인 구호로 그분들을 설득하려고 합니까?
재단 전입금이 1조가 넘어가도 학생들 등록금 줄일 생각은 전혀 안하시는 분들입니다. 돈을 줘야 연구를 하는 교수들이 상아탑에 가득하고, 건물 높이 올리고 돈 많이 거두는 총장들이 경쟁력 있는 CEO 총장으로 존경받는 세상입니다. 학생들의 이런 푸념이 먹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대학이나 교회 하나 큰 거 세워서 돈을 많이 거두고 존경 받기 바쁘신 분들에게 이런 시시한 일로 귀찮게 하면 안됩니다. 학생들은 훌륭한 교수님들 본을 받아서 지금 당장 도서관 가서 경쟁력 강화 해야 합니다. 하기야 대부분의 학생들은 착하게 경쟁력 강화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불만 있는 대학생들이 이러는 거지요. 국민 소득 2만 달러 시대에 500만원 등록금도 내기 힘든 걸뱅이 학생들이 단체로 불만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 아무런 불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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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옳다구나! 이런 불만 있는 학생들은 혼을 흠씬 내주어야합니다. 어디 감히 바쁘신 분들 몰려있는 인수위 앞에서 건방지게 기자 회견을 하고 당선자님을 만나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돈 없고 감투 없는 사람들은 선거 때 높으신 분들이 잠바 입고 와서 손 잡아주고 안아주는 것으로도 감지덕지 해야합니다. 건방지게 찾아가서 직접 만나려고 하면 이런 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치 질서 강화, 기본을 지키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저는 월드컵 때도 심드렁하고 숭례문이 불에 탈때도 그저 그랬는데, 지금 이런 학생들이 혼나는 꼴을 보니 신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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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굴 보십쇼! 멱살 잡혀 끌려가면서 이정도 표정밖에 안나오는 학생들입니다. 별로 절박함이 얼굴에 묻어나지 않습니다. 절박함이 묻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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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간지는 나야 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웃옷을 벗고 한껏 얼굴을 찌푸리고 뛰어나가는 87년 민주화 지존 간지 정도는 나야합니다. 그런 가오도 없으면서 요즘 학생들은 너무 야리야리합니다. 이명박 당선자님 보십쇼. 6.3 운동부터 시작해서 민주화 운동하면서 총학생회장 지내고 세월의 흐름을 빨리 읽고 일찌감치 경제신화를 이룬 입지전적 인물인데, 그런 분 앞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학생들은 철이 없습니다. 우리 선배 세대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지금 이정도나마 이룬 것인데, 어린 학생들이 불만이 많습니다. 아무리 지금의 88만원 세대들이 공부 가장 많이 하고 가장 긴 시간 동안 경쟁을 한다고 하지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이렇게 따지면 안됩니다. 따지려면 경쟁력 무시무시하게 강화해서 높은 사람 되고 난 다음에 따지라고 합니다. 어른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 아닙니까. 어른들 말 들어서 나쁜 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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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이 학생은 경찰서에서 머리 숙이고 조사받고 있을 것입니다. 이 사진은 가오가 좀 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면 안됩니다. 다음 사진의 학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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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맛이 없습니다. 여학생들 보십시오. 혹시나 작년 이랜드 노조 아주머니들처럼 남자 경찰들이 티셔츠 잡아당겨 벗기고, 가슴 만지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선진 연행 기법을 적용하고자 여경들이 동원되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신경 써서 혼을 내주는데도 불만 가지면 안됩니다. 그런데 왜 울고 있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경찰들의 연행 기술도 이제 경쟁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이제 이명박 정부 하에서 집회 시위하는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 한마디 찍소리도 못하고 조용히 연행당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대통령 하라고 30%나 되는 국민들이 지지해주었으면 좀 기고만장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라고 대의민주주의 권한 주는거 아닙니까? 찍어줬으면 불만 가지면 안됩니다. 이번 총선때 또 얼마나 높으신 분들이 황송하게 굽신굽신 다니겠습니까? 굳이 섬기는 것도 딱히 없으면서 국민을 섬긴다는 말을 하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전 어쨌든 쓸데없는 시위 하는 대학생들이 자기 얘기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연행 당한 것 보면서 속이 다 시원합니다. 차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누가 설명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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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윤대 반댈세

2008/02/18 13:56 from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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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좃선일보(오타입니다. 죄송합니다. 좃선일보라고 써서)

신임 교육부 장관으로 내정된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다. 세일즈 교육, 물신 교육, 교육 정책 상업화의 일등 공신이다. 대학 서열화, 고대의 삼성화를 부르짖는 사람이다. 이 분 특히 글로벌에 환장한다. 우리 나라에 100위권 안에 든 대학이 없다고 목에 피가 맺히도록 부르짖는다. 누가 매기는 순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위 안에 들지 못하면 그 대학은 별로 의미가 없는가 보다. 고대는 그렇게 노력해서 아직 들지 못했나 보다.

"고등학교 간 교육 격차를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대의 경우 수능성적과 학생부 모두 1등급인 학생들이 지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변별력 확보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라고 주장하시는 분이다. 대학 입시 지옥을 고등학교 입시 지옥까지 끌어내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요즘 중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에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외국어고, 과학고와 같은 학교를 다닌 학생들에게는 더욱 더 특혜를 주어서 대학 입시에도 특혜를 주어야 한단다. 난 정말 입시지옥이 싫다. 마치 끝없이 무너져 내리는 허망한 입시의 모래지옥 한가운데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명주잠자리의 애벌레 개미귀신을 보는 느낌이다.

"고교 간 학력격차가 엄연한 현실에서 이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라고 주장하신다. 차라리 고교 간 학력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어떻게 대학 입시가 바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다.

"글로벌 대학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여 입학제가 필수적인데, 정부가 이를 반대하는 한 도입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고 하신다. 좋겠다. 이제 당신 스스로 직접 추진하시면 되는 문제 아닌가.

"이름이 뭐가 됐든 학교에 기여를 한 인사의 자제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가 언젠가는 꼭 도입되야 하는 믿음에는 변화가 없다." 란다. 이제 믿음에 변화가 좀 있으시면 좋겠다. 난 가난한 하층민 거렁뱅이 자식이라서 우리 부모님은 당신네 같은 학교에 기여는 커녕 한 학기 등록금 500만원 내기도 허리가 구부러지는 판이다. 이거 일년에 1000만원이고, 4년 다니면 4000만원이네? 우라질. 대학 가도 취직도 못하는 판에 그딴돈 낼 여유 있는 학생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겠는가? 그러니 다들 분수에 안 맞는 대학 다니다가 빚더미에 시달린다. 학자금 이자가 7%가 되는 판에 대한민국에서 이제 돈 없이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공부를 해도 돈, 취직을 하려고 해도 돈이 든다. 게다가 이 양반은 대학 등록금이 1500만원은 되어야 대학 운영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영어만 해도 그래. 우리 같은 사람이 영어만 줄창 씨부려서 도대체 무엇에 써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그저 영어 배우려 미국 캐나다 안 다녀오면, 하다 못해 필리핀 식민지 발음이라도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서 어윤대 차기 교육부 장관님의 영어 정책도 신선하다 못해 찬바람이 분다. 이경숙 위원장의 오륀지 대세론의 각론 쯤 되겠다.

"크고 강한 나라가 아닌 한국이 세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영어 능력의 습득은 필수적. 따라서 영어 공용화도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고 한다. 교육부 이름 바꿔라. MINISTRY OF ENGLISH EDUCATION 으로 바꿔라. 영어 공용화 해라. 그전에 된장 엽전 냄새 나는 당신 인터뷰랑 취임사부터 영어로 해라. 난 한글로 블로깅해서 세계로 진출할거다. 썅, 김연아 박태환 비 정 트리오 박진영이 영어 잘해서 세계 진출했나? 차라리 중국어와 아랍어도 많이 쓰니깐 공용어로 정해서 대한민국을 진정한 글로벌 국가로 만들어라. 한국어 영어 아랍어 중국어 공용이 좋겠다. 학교에서 가르칠 것도 많아서 좋겠다. 니미럴.

영어에는 이런 애매모호한 욕이 없다. 기껏 욕이라는 것이 "너와 성젹 교류를 하겠다." "너의 어머니는 개과의 암컷." "나의 항문을 구강으로 애무하라." 라는 것이 고작이지 않은가? 씨뷔럴, 니미, 육실할, 족같다 등등의 애매모호한 명예훼손의 여지를 피해가기 쉬운 욕설도 없다.

말이 너무 삼천포로 갔기는 한데. 어쨌든 어윤대 교육부 장관은 안된다고 난 생각한다. 이 분, 빈사상태에 빠진 대한민국 교육에 사망 선고 내리기에 충분한 포스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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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iggymother 트랙백 0 :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