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3/19 낙동강 현장의 소리
  2. 2010/03/09 널찾기
  3. 2010/03/01 또 낙동강을 갔다

정부의 4대강 죽이기 사업이 국회에서 예산 문제로 계류되고 있는 동안, 개발주의에 자연환경이 짓밟히는 것을 우려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예산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4대강 죽이기 사업은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소나마 안심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공사 대금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어도, 정부의 방침이 떨어진 이후부터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경상북도 상주시 주변의 낙동강에서는 2009년 여름부터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이름하에 대규모의 하천 준설과 강변의 생태환경 파괴가 꾸준히 이루어져 오고 있습니다. 전 국토에서 16개의 준 댐급 규모의 대형 다목적 보가 건설되는데, 이중에 낙동강에서 그 절반에 해당하는 8개의 보가 생겨나고, 상주에서는 2개의 보가 생겨나게 됩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수많은 물새들과 주변 식생들이 모래밭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던 낙동강의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을 우리는 이제는 다시는 우리의 남은 생에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낙동강 변은 굴삭기와 포크레인, 덤프트럭이 24시간 쉬지 않고 내는 비명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상주 낙동강변의 곡창지대는 강바닥에서 퍼낸 모래와 흙탕물이 가득한 공사판이 되었습니다. 줄줄이 늘어선 덤프트럭이 고용창출 효과를 과시하려는 듯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상주 시민들과 그 지역에서 살아가던 주민들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낙동강 죽이기 사업 33공구 상주보



상주 시내에서 약 10㎞ 떨어진 상주 IC 인근의 상주보는 현대산업개발㈜와 8개 건설사가 컨소시엄으로 시공하고 있습니다. 가장 해발고도가 낮은 강창교에서 내려다본 낙동강의 물은 이미 흙탕물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지난달 암반을 깨고 상주보의 기초공사를 하던 시기에는 오탁방지막이 무색하게 주먹만한 누런 거품덩어리가 강 전체를 덮고 흘렀습니다. 강창교 건너 왼편에는 현대산업개발의 사무실이 있고, 왼편으로 돌아 낙동강 변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모래 제방이 공사차량 통행로로 변해서 수 km를 걸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통행로 양편에는 준설을 알리는 붉은 깃발과 우레탄과 콘크리트로 뒤덮일 것을 알리는 파란 깃발과 노란 깃발이 점령군처럼 기세등등하게 강변에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강변의 갈대와 억새풀로 이루어져 있던 주변 습지와 논으로 활용되던 하천 부지는 젖은 모래로 이미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강변 곳곳은 흙 파기가 한창입니다. 파낸 흙을 실은 덤프트럭은 제방 건너편 농지로 향합니다. 지난해까지 농사를 짓던 강변 하천부지들은 차곡차곡 깎여나가고 있습니다. 넓은 농지는 트럭이 쏟아놓은 흙더미로 거대한 고분군처럼 모래의 무덤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나긴 모래 제방 도로를 지나 현장으로 들어서면, 물막이 공사로 철제빔이 빽빽이 둘러서 있습니다. 안쪽에서는 보 기초공사가 한창입니다. 이미 강바닥의 암반까지 깨고 콘크리트 타설이 완료되어 있고, 그 위에서 철골로 가동보의 수문 기초공사까지 진행되면서 거대한 보의 위용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수백 대의 공사장비가 강 바닥 평탄작업을 벌이며 상주보 인근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의 터전을 깍아내고 있습니다. 3월 현재 공정은 6%가량입니다. 7월 홍수기 전까지 기초공사를 끝내고 가물막이를 해체해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야간작업은 물론이고, 24시간 공사까지 하면서 끊임없이 강을 잘라내고 있습니다.


낙동강 죽이기 사업 32공구 낙단보

낙단보 가물막이 안쪽의 공사현장 영상  2010년 1월 27일

 상주시 낙동면과 의성군 단밀면에 걸쳐 건설하는 낙단보는 국도 25호선의 낙단대교와 상주~의성~단밀을 잇는 낙단교의 위쪽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곳 주변의 강은 강폭이 넓어 그만큼 준설 규모도 큽니다. 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준설 지역 너머로 상주보와 동일하게 철제 빔으로 막아놓은 보 공사현장이 보입니다. 가물막이로 둘러싸인 면적은 2만여 평에 가까운 넓은 면적입니다. 상주보와는 달리 이미 터파기와 기초다지기 공사가 끝나고 수문 바닥 터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사장 곳곳의 조명시설이 탑처럼 높이 솟아 있습니다. 24시간 철야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사장 단면에는 모래를 준설한 바로 아래 2미터부터 오니토가 시커멓게 드러나 있습니다. 지난 며칠 전에 5차 4대강사업 현장조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유원일 의원단과 함께 낙단보 준설현장에서 토양오염층으로 보이는 오니를 발견하고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가파르게 경사가 진 진흙더미 아래로 조심조심 내려가서 검은 진흙 덩어리를 채취했습니다. 코에 대보니 하수구의 악취가 났습니다. 토양오염 및 수질오염 분석을 의뢰할 예정이지만, 분석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이곳에서 달성보처럼 중금속이 나오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니토가 섞인 생활하수에 가까운 시커먼 물이 그대로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있는데도, 현장 관계자는 시커멓게 보일뿐, 머드 성질에 가까운 청정한 흙이라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머드팩을 하라고 그 뻔뻔한 얼굴에 쏘아붙이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오니토가 아무런 조치없이 방치되어 그대로 강물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오리섬이 죽었습니다.










상주보 건설현장 아래쪽에서는 낙동강의 지류인 병성천이 합류하면서 강폭이 넓어집니다. 그 합류지점 바로 위에는 철새들의 낙원인 오리섬이 있습니다. 이 강 중앙에 있는 섬은 이미 준설토로 뒤덮여서 과거의 수생식물과 동물들의 서식지였던 모습을 하나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준설토가 뒤덮인 섬은 5m 정도 해발고도가 올라갑니다. 강물이 6m 정도 깊어지기 때문에 그정도로 흙을 쌓아서 올리지 않으면 물에 잠기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콘크리트로 덮은 후에 생태공원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상주보의 강성호 현장소장은 “(오리섬은) 성토를 하더라도 홍수기 때는 물에 잠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멀쩡히 살아있던 생태서식지를 없애고 이름뿐인 생태공원을 조성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걷는다


지난 10월, 상주에서 진행되는 낙동강 죽이기 사업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 사람들”이라는 조그만 모임을 만든지도 반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할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에 스스로 조바심을 내며 죽어가는 강을 그저 쳐다보기만 한 채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강의 죽음에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지율 스님과 천경배 신부님 등 종교인들을 따라 함께 진행한 순례가 벌써 열 다섯 번째를 맞이합니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낙동강을 따라 걸으면서 강의 아름다움에 새삼 놀라고, 죽어가는 강의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 앞에서 그 모습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걸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낙동강을 바라보고, 강을 따라 걸으면서 힘든 숨을 내쉬고 있는 낙동강과 그 호흡을 느끼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스러져가는 자연을 돈으로,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자들의 무지와 폭거를 용서해달라고 조용히 꿇어앉아서 기도를 올립니다. 강은 대답이 없이 살과 뼈를 드러낸 채 묵묵히 피를 흘리며 흐를 뿐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시멘트와 우레탄으로 덮인 강변과 함께 없어지겠지만, 우리가 낳고 우리가 살던 땅에서 자랄 우리의 후손들의 고통에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책임질 자들은 한번이라도 이 강과 함께 시선을 마주한 적이 있을까요? 과연 이 거대한 공사판의 죽음 앞에서 축배를 드는 자들 중에서 강의 죽음 앞에서 울어줄 자가 한명이라도 있을까요? 없습니다. 없으니까 이렇게 가슴아픈 일이 24시간 지금도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걷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맑은 눈으로 이 강을 한번이라도 더 바라보고, 강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기 위해서 걷습니다. 우는 강은 소리가 없고, 시끄러운 공사판에는 죽음이 흐르지만, 우리는 말없이 걸을 뿐입니다. 지금 사라져가는 이 강의 숨결을 한번이라도 느끼고자 하는 분은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 사람들”로 연락을 주시고, 함께 손을 잡고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내일도 낙동강을 갑니다. 4대강 사업이 멈추지 않는 이상, 우리의 걸음도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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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찾기

2010/03/09 19:43 from 분류없음

27일 대보름 행사날에 강변에서 거대한 달집을 만들고, 떡국과 오뎅을 나누어먹고, 연날리기와 윷놀이, 널뛰기를 하자는 계획은 일견 완벽한 듯 보였다. 석호 형님과 함께 충북 보은의 관기 제재소에 가서 땔나무와 널뛰기용 널을 켜서 찾아올때만 해도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나무를 가득 실은 동성보일러 트럭은 다음날 돌려주어야만 했다. 몇 톤의 나무를 다시 옮겨실을 엄두가 나지 않은 우리는 행사장 입구에 모든 나무를 부어놓았다. 길이 10미터에 폭이 40cm, 두께 7cm 의 널뛰기용 널 하나를 위해 통나무 하나를 통짜로 켜야만 했고, 그 널은 10만원의 고가의 상품이 된 직후였다. 널 하나를 10만원에 구매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다행히 전통놀이용 널이 필요했던 환경농업학교에서 널을 구매해준다는 조건을 달아놓았기에 맘놓고 고가의 널을 제작한 것이었다. 강변에 버려진 폐냉장고 위에 널을 조심스레 모셔놓고 우리는 대나무와 땔나무를 모두 부어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행사를 위해 유유히 밤에 강변을 떠났지. 누가 그 시간에 낙동강변에 와서 고가의 널빤지를 가져가겠어? 라는 생각을 상식적으로 한 것이니까.

그리고 다음날, 행사 당일 강변에 와보니 그 시간에 누가 이미 널을 가져간 뒤였다. 10만원이라는 고가의 널을 잊어버렸다는 아쉬움 말고도 그날 당일 널뛰기를 임시로 구한 조그만 널에서 진행할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서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행사를 진행하면서 챙길 물건은 수백개가 넘었고, 일단은 널뛰기 말고도 진행할 코너는 수십개가 넘었다. 다행히 사람들이 다들 바쁘게 이리저리 뛰면서 챙겨준 덕에 대보름 행사는 무난하게 마무리되었지.

스님이 와서 자기 마을의 주민 중 하나가 버려둔 것으로 착각을 하고 널을 가져갔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준 것은 며칠 뒤였다. 그리고 오늘, 잠깐 짬이 나서 다시 중동면 회상리 마을로 갔는데, 아뿔싸, 스님의 말 한마디 만을 믿고 일단 마을에 갔는데, 그래 그널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지. 스님에게 전화를 하려고 전화를 했으나 전화기는 싸늘하게 꺼져있고, 응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김 교수님과 낙동강변을 조사할 것이라는 스님이 지나가면서 던진 말 한마디 말고는 행방이 묘연했다.

김 교수가 대체 누굴까. 대한민국에서 김씨 성을 가진 대학 교수가 한두명인가. 어렵게 시간을 내어서 현장에 다시 왔는데, 김 교수님 일행이 있다는 것 말고는 스님의 행방을 알 길이 없으니. 일단 생각난 김 교수는 녹색평론사 김종철 교수님 밖에 없었다.

"거기 녹생평론사 맞나요?"
"네, 무슨 일이시지요?"
"혹시 김종철 교수님이 저희 지율 스님과 함께 낙동강 현장 조사를 하고 계신가요?"
"?"
"혹시 지율 스님과 함께 있지 않나요? 그쪽 일행중 누군가가?"
"아닌데요......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밑도 끝도 없이 김종철 교수님과 있는 지율 스님을 바꾸어달라고 하는 몰상식한 이상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저....저는 녹색평론사의 책을 애독하는 사람이에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네, 그런데 저희 김종철 교수님은 지금 낙동강에 있지 않아요."
"네, 저는 다만, 혹시, 그......김종철 교수님이 지율 스님과 있지는 않는가를 알고 싶었던 거지요."
"네 아니랍니다. 왜 스님이 같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는지를 물어봐도 되나요?"
"네......저는 그 스님이 있다고 한 널뛰기용 널의 소재를 알고 싶어서요......"
"?????"

나는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너 거기 있지? 라고 물어놓고는 왜 묻냐고 하니까 널뛰기용 널이라는 황망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 전화를 끊는 것이 중요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네, 항상 녹색평론사의 책을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
"네 제가 이해를 잘 못하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어쨌든 저희 대표님은 그쪽이 원하시는 스님과는 함께 있지 않은 것 같네요."
"네 건투를 빕니다. 안녕히 계세요."
"?????"

전화를 받은 그 사람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난 얼굴이 벌개진 것이 식기도 전에 마을에 가서 어르신들에게 닥치는 대로 물어보면 널의 소재를 알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도중에 트럭이 농수로에 빠져서 트랙터가 와서 끌어내주고, 열명 정도의 마을 어르신들이 나에게 ?????라는 표정을 짓기 전까지는 그나마 그래도 알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이제 포기하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되돌아가야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 스님네 집에 불편한 게 없나, 저번에 말씀하시던 전기는 제대로 되었나 보고 가야지 라고 생각하고 집에 들르니 촉촉한 채마밭에 정갈하게 호미질을 하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할머님, 안녕하세요."
"음, 젊은이들이 왠일인가?"
"네 저희는 스님이랑 저번에 강가에서 달집태우던 사람들인데요."
"응, 알지, 마을 사람들 다 거기서 놀다 왔어."
"혹시 널뛰기용 널을 거기서 누구 한분이 버려둔 것으로 알고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스님에게서 들었는데요, 누구 집인지 알수 있을까요?"

할머니는 허리춤에 젖은 장갑을 끼우고 허리를 주욱 펴셨다. 눈빛이 반짝 빛났다.

"알지. 알어. 저기 가면 소먹이는 박** 집이라고 있어. 거기서 가져갔어. 내가 알려주더란 이야기는 하지마."

미친듯이 트럭을 타고 마을 회관으로 굽이굽이 들어가면 소먹이는 집이 딱 한군데 있다. 무료하게 풀을 뜯는 소는 우리를 본체만체 했다. 소를 무시하고 집문을 두들겼다. 땅딸한 할매는 언뜻 겁이 난듯 선뜻 널을 창고에서 내주었다. 그렇게 결국 찾은 널로는 정작 한번도 널뛰기를 못했다는 이야기다. 마무리가 이상해서 미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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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낙동강을 갔다

2010/03/01 19:42 from 분류없음
날씨가 춥고 우중충했다. 당연히 가기 싫었지. 열시까지 딩굴거리다가 후닥닥 준비하고 갔더니
몹시 지친 여자들 8명이 우리를 맞았다. 리스한 LPG+전기 하이브리드 아반떼 2대를
나누어 타고 일단 예천 회룡포로 향했는데, 비오는날 산을 오르니 아주 춥고 으슬으슬했다.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은 설명은 뒷전이고 그저 조금이라도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떨 뿐이었다.
그나마 갔다가 새중동식당에서 뜨뜻한 방에 앉아서 두부와 매생이전, 꽃게된장찌개, 자반고등어가 나오자 다들 얼굴이 확 펴졌다.
다들 맛있게 밥을 잘먹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찬찬히 보니 아주 괜찮고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다시 상주보로 갔으나 다들 추위에 떨뿐이고.
곶감을 사간다고 해서 밤골마을 가서 재봉이 형님에게 소개를 해주고 다들 곶감을 두어개씩 먹으니
또 얼굴이 확 펴진다. 커피와 곶감을 먹으니 다들 재잘재잘 아주 밝고 이쁜 사람들이었다.
밖에 나와서 기념사진 찍으려다가 곶감상자를 땅에 흘리기도 한다. 바람을 쐬니 또 움츠려든다.
차에 타니 다시 환한 얼굴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감사하며 힘든 하루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다. 안전하게 잘 갔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따뜻한 집에 가서 뜨거운 물로 씻고 부숭부숭한 이불에서
꿈 안꾸고 푹자기를 바라는 마음이 쎄다.

오늘의 교훈

여자들은 추운 곳에 두지 말고 따뜻한 곳에서 맛난 것을 먹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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