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오던 날

2007/12/31 18:38 from 잡담
"XXX, 이게 뭐야? 연말에 쉬지도 못하고......"
 
김 병장이 삽을 뜨다 말고 일어서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며칠간 날씨가 따뜻하다가 갑자기 싸락눈이 오는 바람에 날씨는 추웠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연병장에 삽질을 하는 장병들의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김 병장님, 행보관님이 부르시는데 말입니다."

행정반 박 일병이 뛰어와 숨이 턱에 차서 김 병장을 불렀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서류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박 일병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김 병장은 귀도리를 벗고 전투모를 다시 썼다. 보나마나 무슨 일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인테리어 공사일을 하던 김 병장은 솜씨가 좋아서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여기저기서 할 일이 많았다. 겨울철에는 보일러 관리, 여름에는 풀 베기, 구멍난 창고 지붕도 고치고, 신발장도 만들고, 면회소도 다시 짓다 보니 김 병장은 군생활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빨랐다.

"어, 잘 왔어. 그 뭐냐. 검문소 지붕의 위장막이 낡아서 좀 바꿔야 겠는데, 창고에서 ......"

한참을 행보관에게서 작업 지시를 받은 김 병장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경례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때 행보관이 그를 다시 불렀다.

"힘들지? 이거 하나 먹고 하게."

행보관이 맛스타를 하나 내밀었다. 맘씨 좋은 행보관의 늙수그레한 얼굴에도 며칠 사이 주름살이 늘어 있었다. 쉬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쉴새 없이 점검을 한 탓이다. 김 병장은 고향의 아버지가 문득 생각이 났다. 맛스타는 달고 진했다. 행보관의 배려가 느껴졌다.

"XXX, XXX가 XX하게 XX하는 XX......."

한편 연병장의 이 상병은 욕설을 날렸다. 얼음땅을 뚫고 삽질로 애써 곱게 다진 연병장에 하얀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러면 기껏 작업한 연병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내일 새벽에 제설 작업을 하면 드러날 것이다. 또 눈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저기서 작업을 하던 장병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서 욕을 했다.

지난 두어 달간 부대의 모든 장병들은 한시도 쉬지 못했다. 부서진 곳을 공사하고, 묵었던 곳을 다 헐고 새로 짓고, 쓸고 닦고 칠하고 광내고, 화장실 소변기도 하나만 정해서 쓰고 나머지는 번들번들하게 닦아놓고 쓰지도 않았다.

평소에는 이 정도 눈이 오면 길이나 쓸고 내무반에서 연휴를 누워서 지낼 것이지만 그런 것 없다. 심지어 휴가도 모두 미루고 일을 해야 했다. 내일은 특별한 날이다. 원스타 투스타가 뜨는 것도 아니다. 부대의 모든 장병들이 쉬지도 못하고 두달간 미친듯이 일만 한 이유는 바로 이분이 오시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는 눈 오는 하늘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힘껏 내밀며 소리쳤다.

"썅, 제발 좀 오지 말라고오오오오오ㅗㅗ~"


참고
역대 대통령 군부대 방문 횟수

박정희 1963년부터 1978년까지 총 71회 방문, 연평균 4.4회
전두환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총 49회 방문, 연평균 6.1회
노태우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총 22회 방문, 연평균 4.4회
김영삼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총 14회 방문, 연평균 2.8회
김대중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총 13회 방문, 연평균 2.6회
노무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총 6회 방문, 연평균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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