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뮨의 크기

2008/02/25 20:50 from 꼬뮨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혼자 살면 외롭다. 후손을 남기기도 애로사항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동물들처럼 고독을 즐기다가 쿨하게 관계를 맺고 헤어지고 새끼를 키우다가 독립시키는 개인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구성하지도 못한다. 혼자 존재하는 인간은 무능하고 약하다.

인간을 그렇게 떼로 모여서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강해졌다. 모여 있는 두명은 따로 있는 두명보다 세고, 모여 있는 천명은 따로 있는 천명보다 천배 이상 세다. 인간은 그렇게 모여서 힘이 세졌고, 많아졌기 때문에 지구를 정복했다. 이제 인간이 너무 많아서 지구가 몸살을 앓는다. 땅 속 깊숙이 박혀있던 기름과 석탄을 파내고, 태워서 자기 좋은 일에 쓰고, 그 연기로 인해서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인간들이 많이 모이면 슬픈 인간들도 더 많아진다. 인간은 사회를 만들었고, 사회는 계급을 만들었고, 계급은 착취를 만들었다. 착취당하는 인간은 슬프다. 착취하는 인간이라고 해서 딱히 즐거울리는 없다. 원래 인간이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를 내재한 존재는 아니다. 그런데 착취하게 되었다. 구슬르거나 을러서 뺏고, 모으면 효율적이다. 한 인간이 만들어낼수 없는 많은 것을 다수가 모이면 다수가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슬픈 인간은 끝없이 생겨난다. 그래서 사회와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어나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적당히 모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꼬뮨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꼬뮨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꼬뮨이 너무 적으면 무능하고, 너무 많이 모이면 슬퍼진다. 배고프고 서럽게 울면서 살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닌데, 사람이 모임 곳에서는 꼭 어렵고 서러운 이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적당히 모여 살기로 한다면 몇명이 가장 적당할 것인가? 꼬뮨에 대한 고민의 맨 처음은 공동체의 물리적 크기를 고민하고 그를 통제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꼬뮨은 그 합목적성을 이루기 위해서 특정한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서 내부의 창조적 자산이 상속되어서 내려오면서 공유 심화 발전되어야 한다든가, 사회적 갈등을 외부적 제도가 아닌 구성원의 합의로 최대한 만족스럽게 해결할수 있어야 한다든가 등이다. 그 이외에도 공동체의 후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혹은 공동체의 유지는 영속적일 필요가 있는가 등이다. 단계적으로 층위가 낮은 꼬뮨이 종속적으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상이한 꼬뮨이 불특정하게 분포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상존한다.

꼬뮨의 크기는 10-20명 정도가 적당하다. 그 정도면 집중된 노동력으로 높은 생산력을 가질수도 있을 뿐더러 과도한 분업으로 인한 노동 소외 현상을 야기하지도 않는다. 꼬뮨의 구성원은 연령과 성별, 직능 등이 다양해야 하지만 가치관과 종교, 성적 취향, 언어 등이 과도하게 상이하면 유지가 어렵다.

지속적인 노마드의 방문 없이는 꼬뮨은 고립되고 부패할 것이다. 노마드는 항시 상존하는 2-10명이 적당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10-20명이 살면서 2-10명의 노마드를 끝없이 받아들일 여력은 있는 공간에서 2-4 가족 꼬뮨이 살아야 한다.

오늘의 고민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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