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기름 유출 사고가 의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이 이틀간 올블로그를 떠들썩하게 했다. 중년탐정 제닉스님이 현장에서 직접 관련되어 있으며, 경험도 풍부한 어민의 입을 빌려 삼성의 기름 유출 사고 발생 경위를 의심했고, 그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없다를 따지기 이전에 정말로 쑈킹한 주장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사실 크레인 선박이 멀쩡히 운항중에 무선을 무시하고 유조선을 들이받은 행위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고, 하민혁님이라는 블로거가 논란이 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난 삼성이 일부러 좋아서 껄껄 웃으면서 유조선을 들이받았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삼성중공업 소속의 배가 사고를 내서 삼성 비자금과 떡검 사태를 물타기, 아니 기름타기를 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일단 설득력이 없다.

사실 삼성이 그 일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고 우리가 모여서 아무리 삼성의 의도를 넘겨짚으려고 해도 알 턱이 없다. 삼성은 우리가 알 필요가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묵묵부답이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위기를 넘겨 온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삼성의 내부 보고 문건에는 침묵을 지키는 것 이외에 더 좋은 대책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지금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이해가 빠른 체념이다.

난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거의 버렸다. 삼성에서 일하는 동기들은 대한민국의 문제를 노조에서 찾기도 했지만, 난 그들의 생각을 그런 식으로 바꾸어 놓는 삼성의 체계에서 문제를 찾는다.

이것은 마치 이명박이 의도적으로 대한민국을 엉망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에 따라서 열심히 행동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명박의 세계관에서는 친일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고 과거사를 바로 세우는 위원회는 국가 예산 낭비에 불과하고,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천명했던 작은 정부를 무시하고 마구 개입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것은 올바르고, 도덕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 메카니즘 내에서 납득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이다. 죽어있던 적이 없었던 경제라는 것을 살린다는 것은 막상 그들의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  경제라는 것이 죽어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천의 냉동 창고 화재로 인해서 40명의 목숨을 잃은 것이 노무현 탓이 아니라 경기도지사(한나라당 김문수), 이천시장 조병돈(한나라당, 이자는 작년 새끼돼지를 잔인하게 찢어죽인 군부대 반대 집회에 참석한 고위층 중 한명이다)의 안전 단속 미비의 책임이 크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대부분을 차지한 이천과 경기도의 위정자들의 탓을 하는 것이 상식적인 반응이지만, 자신들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꾸중을 듣고 반성하는 것은 그들의 세계관에는 좋지 않은 일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폐지되는 '쓸모없는' 위원회들(sweetqueer 님 블로그에서 인용)

1.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 조사 위원회 (2006년 출범)
2. 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 (2006년 출범)
3.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2005년 출범)
4. 친일 반민족 진상 규명 위원회 (2004년 출범)
5. 삼청 교육피해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 (2004년 출범)
6.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 위원회 (2004년 출범)
7. 일제 강점하 강제 동원 피해 진상규명 위원회 (2004년 출범)
8. 동학 농민혁명 참여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 (2004년 출범)
9. 특수 임무 수행자 보상 심의위원회
10.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2000년 출범)
11.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위원회 (2000년 출범)
12. 거창 사건 등 관련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 (1998년 출범)
13.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 지원 위원회 (1990년대 출범)

역사는 투쟁이다. 그 투쟁은 기억의 대립이다. 그 기억은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 대한 기억이다. 노무현 정부를 성공한 정부인지 실패한 정부인지 만드는 것은 후자들의 기억에 기반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양자 간의 처절한 대립이다. 마치 박정희 정부를 독재개발 국가사회주의로 기억하느냐, 아니면 새마을 운동과 경부고속도로로 대비되는 경제 성장의 신화로 추억하느냐 간의 대립이다. 어느 것을 추억하든간에 과거에 존재했던 것은 현실로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만이 계속 살아서 우리의 뇌리를 지배한다.

그 과정에서 누구의 기억을 내가 인정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과거의 역사에서 지금 우리에게 의미를 던져 주는 것은 무엇인가? 독립운동에서 시작하여 전태일과 광주, 87년의 민주화로 이어지는 대립과 저항, 극복의 역사인가? 아니면 친일과 독재, 경제 개발에서 삼성과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승리자의 기억, 주류의 향취인가?

둘 중에서 어느 하나가 옳은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의 기억이 나의 역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대부분의 국민들이 머리로만 기득권, 중산층이 되려고 하는 것이 싫다.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조건을 객관적으로 보고,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이건 마치 대부분의 거렁뱅이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부자처럼 생각하고 살면서 구걸을 하는 노릇이다. 그들중 일부는 분명히 부자의 세계관에서 행동한 댓가로 부자가 되겠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대다수로만 남아서 승자의 기억에 기생하여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와 불만이 누군가에게 표출이 되는 시점에, 그들의 우상이었던 자들에게는 그 불똥이 튀지 않는다. 그것이 역사인가 보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모포비아 새끼들  (2) 2008/01/12
아무리 그래도 변하지 않는 역사  (0) 2008/01/09
그가 오던 날  (0) 2007/12/31
대마초는 죄가 없다  (0) 2007/12/28
Posted by piggymother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