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자리

2008/03/02 23:32 from 잡담

27살에 군대를 뒤늦게 간 천재 음악인 윤모군이 휴가를 나왔다. 난 오후 내내 얇은 옷을 입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4시간 가량을 걸었기 때문에 감기 기운이 오고 몹시 피곤했으나 그를 만나기 위해서 기꺼이 갔다. 난 그를 그정도로 좋아한다.

그는 군악대 생활이 할만하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모두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내는 그 특유의 허세와 진실이 반반 뒤섞여 있었으나 건강하고 기운차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서 군살이 빠져서 더 서글서글해보였기 때문에 난 마음이 놓였다. 사실 요즘같이 힘들게 사는 세상에서는 군 생활이 어렵다고 할 만한 게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친구 중에 한두번 꾸벅 인사한 적 있는 친구가 있었다. 검소하고 조용해 보이는 친구였다. 말을 섞어보니 실제로 그랬다. 국문과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윤 군도 국문과다. 그의 대학 과 친구인가 보다.

요즘 흔히 볼수 있는 대학생 친구들과는 달랐다. 계간지 현대문학이나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읽다가 녹색평론을 본다고 했다. 장애인 비장애인 통합 야학 교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면서 삶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안타깝다고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초등교사 최ㅇㅇ 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폐증 아이를 받아서 일년 간 함께 지낸 그녀. 아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자폐증 아이, 하루 내내 반 모두가 그 아이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사고가 생기지만 사랑할수 밖에 없는 아이, 그 아이와 일년을 보내면서 학부모들과 나이많은 동료 교사들을 설득해 나가면서 하루하루 비명과 울음보다 웃음과 배려가 생겨나던 아이의 기록. 그리고 그녀의 사례에서 토출해낼수 있는 결론.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우리 모두가 골고루 나눈다면 감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선할수 있는 문제이다." 라는 것.

그는 예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야학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다시 꼬뮨의 조건들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친구들은 이젠 지겹단다. 좀 뭐라도 해보란다. 지금 난 뭔가를 하고 있다. 시골 가서 융자 안끼고 자급자족 하면서 살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나누어주는 텃밭매뉴얼을 단숨에 독파했다. 농사일을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봄이 되고 땅이 녹으면 모종을 키우고, 아주심기를 해서 여름부터 가을까지 내내 솎아먹으면서 키울수 있는 채소들이 있는 10평 텃밭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흙으로 두텁게 집을 짓고 농사일을 하면서 책을 읽고 매일 땀흘리고 살수 있었으면. 사람들과 공동체 하나 만들어서 그렇게 살수 있으면.

술자리는 그렇게 끝나고. 내일 또 출근해야한다. 꿈은 아직 멀고, 삶은 버겁고, 가족과 공동체가 필요한데 내 방은 좁고 외롭다.

Posted by piggymother 트랙백 0 : 댓글 0